카인의 유전자
톰 녹스 지음, 이유정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정말 놀라운 흡인력이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두께를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다. 도대체 어떤 힘일까? 팩션이라는 것의 묘미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더 있을것만 같다는 느낌으로 책장을 덮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이 거침없다. 한순간이라도 약간은 느슨해질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그런 것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책장을 덮으면서도 그랬다. 알 수 없는 두려움... 한낱 소설일 뿐인데도 이렇게까지 강한 여운을 남겨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정말 그랬을거라고 믿고 싶어지는, 어쩌면 정말 인종우월주의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되받아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오른다. 세상의 모든 것들속에 존재하는 종교라는 그 이념이 싫은 까닭이다. 사람은 어째서 그런 환상적인 이념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 세계사의 역사를 살펴볼 때 종교적인 이념이 끼어들면서 모든 것은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 책속에서 느껴지던 그 묘한 대비가 왠지 껄끄럽다. 신을 믿나요? 신을 믿지 못한다구요? 그 어느것에도 대답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미묘함의 차이.

팩션의 함정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절묘한 어울림 앞에서 그만 주저앉아버리고 만 그런 느낌..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건축물들은 모두가 사실이다.  건축물들이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조차도 우리는 금방 알 수가 있다. 비밀을 안고 있던 라투레트 수도원은 프랑스에 실존하는 건축물이다. 그 수도원을 만들었다는 르코르뷔지에는 정말로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이다. 또한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수사의 절반 이상이 정신이상을 보였다는 것조차도 사실이라 한다. 작품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오이겐 피셔도 우생학을 연구했다는 실존인물로, 나치에 협력하여 여러 인종을 대상으로 다양한 유전자 실험을 자행한 과학자란다. 우생학이란 것이 나쁜 유전자를 피하고 우량한 혈통을 보존할 목적으로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고 하니 자주 마주치는 오이겐 피셔라는 인물이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저자가 깔아놓은 팩트(fact)의 함정은 깊다. 픽션(fiction) 보다는 팩트(fact) 의 힘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다른 인종보다 뛰어난 민족이 있는 것일까? 지금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나라들의 0.5%내에는 유대인이 한명씩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다. 유전적인 것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그들이 좀 더 상황대처에 능숙하거나 생활에 대한 적응력이 더 높을 수는 있다고 본다. 이 책속에서 잠깐 언급되었듯이 그들은 환경에 의해 그렇게 우월성을 재창조하게 되었을 수도 있을테니...  아주 오래전부터 명망있는 가문들은 자신들만의 우월성에 눌리며 살았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 근친교배의 예를 보아도 그런 것 같고...  그것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우월성에 대한 파급은 상당히 크다. 굳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민족주의를 따져보지 않는다해도 누구나 남보다 자신이 더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얼마전에 읽었던 <편집된 역사>라는 책에서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백인우월주의에 의해 너무나도 많은 인류의 역사들이 편집되거나 혹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그런 것을 볼 때 어딘가에 치우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째서 그토록이나 광적으로 외골수를 고집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욕심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오직 나만을 앞세우고 싶어하는 그런 욕심 말이다.

성경을 살짝 꼬아버린듯한 스토리라인이 재미있었다. 신께서 자신이 아닌 아벨의 제물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을 돌로 쳐서 죽였다는 카인을 앞세우면서도 이 책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아니 오히려 성경을 교묘하게 비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비틀림이 왠지 껄끄럽지가 않음은 무슨 까닭인지... 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먹이감처럼 살짝 던져주고는 우리의 역사적인 오류였던 나치의 우생학 연구에 관한 사실들을 늘어놓는다. 인류의 역사를 부끄럽게 만드는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보다도 더 독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 카고는 정말 존재했을까? 사전을 찾아보니 프랑스사전에 이렇게 실려있다. 독실한 신자인 체하는 사람, 위선자, 천민... 책에서도 불가촉천민이라고 말했듯이 그다지 좋은 뜻은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우생학 연구는 너무나도 지독했다. 야합과도 같은 카톨릭교회와 나치의 은밀한 거래라니... 처음부터 계획되어진 일이 아니었다는 홀로코스트가 왜 진행되어져야만 했는지 변명처럼 늘어놓고 있는 배경이, 소설이지만 사실인것처럼 소름돋게 하는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묻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악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부터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어하는 걸 느끼게 된다.
 
정말 오랜만에 긴장을 늦추지 않는 스릴러물을 읽었다. 사건들은 나열되지만 그다지 복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그 열쇠를 빨리 찾아내야만 한다는 조바심만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빨려들어가고 말았다는 말이다. 스토리형식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 그러나 이 책처럼 두 갈래 길에서 시작하여 마침내는 하나로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 정점을 찍게 되는 형식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한다. (나만의 느낌일뿐이겠지만) 잔인한 장면들속에서 미친 존재감의 프리메이슨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들의 일부가 유태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가졌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빌어 학살에 대한 처절함을 말하고 있지만 내게는 아주 짧은 순간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여왕마고>의 장면들이 오버랩되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뻔한 소재, 뻔한 형식을 가진 단순한 오락소설일 뿐인데 강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에 놀랐다. 저자의 전작이라는 <창세기의 비밀>이 궁금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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