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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함께 보는 우리 옛 건물 - 이용재 선생님이 들려주는 문화재 속 역사이야기 ㅣ 토토 생각날개 5
이용재 글.사진, 김이랑 그림 / 토토북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이용재의 책은 독특한 문체때문에 기억에 남게되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너무 가벼운 문체때문에 살짝 짜증난다고도 하지만 책이라고 다 무거울 필요는 없다. 더구나 무거운 주제로 여행을 떠나는데 말투마저 엄숙해진다면 그 여행은 정말로 재미없다.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조근조근 딸에게 설명해주는 아빠의 목소리가 좋았던 모양이다. 우리문화나 역사를 공부할 때 처음 접하기가 쉽진 않다. 낯선 용어들도 그렇지만 다짜고짜 시대의 흐름을 짚어줘야 한다고 들이대는 연대는 반드시 외워야만 하는 것처럼 거부감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연대를 외우기보다는 그 시기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파악한다면 굳이 외우지않아도 흐름을 파악하게 된다. 역사라는 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발생되어지면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가져오는 까닭이다. 이용재가 딸과 함께 다녀온 이번 여행길은 '우리의 옛건물 제대로 바라보기'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가보았던 곳도 있지만 가보지 못한 곳도 많으니 내게는 오히려 숙제만 더 많아진 셈이다. 가보았던 곳조차도 내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챙기게 되니 일석이조다. 미리 사전학습을 하고 간다해도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거니와 이것만큼은 꼭 보고와야지 했던 것들도 경황이 없어 빠뜨려버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아차, 했던 기억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기에 역사여행이나 하나의 주제를 생각하고 떠나는 테마여행은 시간을 좀 넉넉히 잡고 떠나는 것이 좋다. 시간에 쫓기다보면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만 보고 오는 관광이 되어버리고 말기에.
조선의 5대 유학자로 꼽히는 회재 이언적이 머물렀다던 독락당은 정말 매력있다. 스스로가 주변의 산이며 바위며 시냇물에 이름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생김새에 따라 산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산이름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곳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옛날의 이름이 더 정겹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산이 자줏빛 옥처럼 생겼다고 자옥산, 춤추는 학처럼 생겼다고 무학산, 땅에 떨어진 도덕을 새로 일으켜야 한다고 도덕산... 어찌 들으면 우습기도 할테다. 하지만 그 사람만의 기개를 볼 수 있는 호칭이기도 할 것이기에 더 마음이 간다. 물론 같은 걸 보더라도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너무나도 주관적인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그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니 그런 것을 품을 수 있는 아량 또한 가져볼 일이기도 하다. 회재가 독락당을 지어놓고 자계라고 이름진 냇물을 보려고 하였더니 담장에 가로막혀 시냇물이 보이지 않아 담장에 창을 냈다는 말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담장에 창을? 얼마나 멋진 생각인지... 그렇게 해서 살 창속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이 창은 살아 움직이는 한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아쉽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으니...
향교는 사실 가는 곳마다 그게 그거다. 학교이니 어쩔 수 없다. 대성전에 여러 성인을 모셨고 명륜당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다. 그야말로 사당이기도 하고 학교이기도 한 것이다. 대성전에는 보통 공자 한 분만 모시는 줄 알았는데 경주향교의 경우를 보고 알았다. 그토록이나 많은 성인과 문인이 배향된다는 것을. 5대 성인으로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를 모시며, 송조 6현으로 정호, 주희, 주돈이, 청이, 소옹, 장재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문묘18현이 있는데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광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다. 경주향교는 이중에서 5대 성인과 송조 2현, 문묘 18현을 모신다. 물론 각 지방마다 여건에 따라 모시는 분을 선택할 수 있으니 딱히 정해진 법칙은 아닌 듯 하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동재와 서재가 나뉘는데 동재는 양반의 자식들이, 서재는 첩의 자식인 서얼들이 공부하는 방이었다고 하니 공부하는 것에도 신분차이를 둔 것은 안타깝다.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 경기전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전주한옥마을을 한번 보러가자고 벼르고 있으니 가는 길에 시간을 넉넉히 잡아 경기전과 전주객사는 꼭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객사는 왕명을 전하는 신하들이 머물던 여관이다. 외국 사신을 재울 때도 쓰고, 왕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곳이기도 하다. 고창읍성을 찾았을 때 객사인 모양지관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던 날이 있었다. 전주객사는 현존하는 객사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왕의 초상을 대신해 봉안하던 목패를 전패라 하는데 그 전패를 모신 곳이니 관찰사가 머물던 동헌보다도 격이 높은 곳이 바로 객사인 것이다. 전주가 조선시대에는 한양과 평양에 이어 세 손가락에 꼽히는 대도시였다는 것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그것뿐일까? 강릉하면 떠오르는 곳이 오죽헌과 선교장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곳을 떠올릴 때마다 이이와 신사임당을 생각해 왔다. 왜 그랬을까? 사실 선교장은 세종인 충녕대군의 둘째형 효령대군을 떠올려야 맞다. 형인 효령대군이 정치에 뜻이 없어 동생인 충녕이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정치와는 멀게 살았던 효령대군은 형인 양녕대군보다 더 오래살아 91세까지 살았다. 9명의 왕을 보는 세월이었으니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정치에 뜻을 두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살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일제도 건드리지 못한 집안이 바로 효령대군의 집안이었다고 할까? 이 선교장이야말로 제대로 풍수사상에 입각하여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의 형세가 많이 변했을테지만 말이다.
가보지 못한 거조암 영산전도 궁금하다. 그런 사찰은 비 온 뒤 살짝 안개를 머금은 날 찾아가면 금상첨화다.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가보았던 곳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꺼내 맛보라 한다. 도산서원을 감싸고 돌던 그 분위기하며, 소쇄원의 정겨웠던 흙담장, 여유당에서 정약용이 많은 이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 나누었을 그 마루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서너번을 가보았어도 다시 가고 싶은 곳중의 하나인 화성도 그렇고, 가까이 있어 좋은 아담한 남산골 한옥마을 또한 그리워진다. 책속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복원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어느날 느닷없이 불타고 있는 숭례문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복원한다고 해서 그 문화재가 안고 있었던 오랜 세월까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복원과정에서 쓸만한 재료를 골라 다시 쓴다해도 이미 상처난 문화재는 아픔으로 기록되어질 뿐이다. 다 떨어져 헤진 옷을 기운것처럼 군데군데 얽힌 우리의 역사를 보고 싶은 건 아닐테니...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