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내게 경고하기를 '구운몽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고 했다. 유치하다거나 그저 그런 내용일것이라는 조선 시대 소설에 대한 편견들을 버려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덤벼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고. 최대한 고전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는 작품 해설속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쉽지 않은 문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겁을 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주 친절하게 각주를 달아 주었으니 하는 말이다. <九雲夢>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도 필수적으로 나오는 작품이었다. 그랬기에 서포 김만중이라는 지은이의 이름도 낯설지 않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九雲夢>을 대표하는 이름이 김만중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김만중은 어떤 인물일까? 대단한 집안내력은 말하지 않는다해도 그가 거쳐간 벼슬 또한 만만치가 않다. 스물아홉 살에 장원 급제하여 도승지, 대제학, 대사헌을 거쳐 예조판서를 역임했다는 그의 경력을 보더라도 대단한 학식과 재주를 가진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그가 부귀영화의 부질없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쓰게 된 이유가 조정에 대한 비판으로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때문이라고 하니 사람이 어떠한 상황에 처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유배지에서 홀로 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담기 위해 썼다는 것이 바로 <구운몽九雲夢>일지도 모른다고는 하지만. 성실한 불자였던 성진은 여덟 명의 선녀와 만나 주고 받았던 말 몇마디로 인해 잠깐의 흐트러짐을 보인다. 그런 이유로 스승 육관대사에게 죄를 입어 인간 세상에 양소유라는 인물로 환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양소유라는 사람을 통해 보여지는 현실이 그다지 현실같지가 않다. 꿈속에서 또다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가 이미 환생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환생전의 인상을 풍긴다. (꿈속이라해도 꿈을 꾸는 사람은 여전히 나이기 때문일까?)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써 쉽게 이룰 수 없는 것들을 너무도 쉽게 이룬다. 그 뿐이랴! 자신에게 죄를 입힌 여덟 선녀의 환생을 다시 만나 꿈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어지는 그들의 만남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이미 서로를 묶은 끈으로 연결되어진 듯이 하나씩 모여드는 두 명의 부인과 여섯명의 첩은 인간으로써는 보일 수 없는 관대함을 안고 있다. 양소유가 나아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없다. 탄탄대로다. 그 탄탄대로를 따라 모든 것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운몽九雲夢>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최대한 고전의 분위기를 살렸다는 말이 나를 유혹했다. 괜찮을까 염려도 되었지만. 처음엔 조금 껄끄럽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그가 외로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고는 하지만 아주 잠깐씩 내비춰지는 그 마음이 이 글을 이끌어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양소유라는 인물을 따라 맴도는 그 자신의 부귀영화를 더욱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만큼 양소유라는 인물 주변은 화려하다. 그가 어떻게 출세하는가라는 과정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여인을 얻음으로 인해 그런 것들이 함께 따라오는 듯한 분위기도 묘하다. 그렇다고하여 그와 여덟 명의 여인들이 엮어내는 애틋한 사랑이 주된 흐름도 아닌듯 하다. 조금은 통속적인 그들의 만남속에서 서로를 향한 절절함은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그토록이나 훌륭한 학식과 명예를 가졌던 김만중이 왜 이런 글을 썼던 것일까? 사대부가 소설을 쓴다는 자체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던 그당시를 그려볼 때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속의 문자들이 결코 어떤 형식이나 규율을 어기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그도 신분적인 의미를 완전히 내버릴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속에서는 어머니를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좀 전에도 말했듯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아주 잠깐의 스침일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덟 명의 여인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희안하게도 여덟 명의 여인들이 제각각 저마다의 특징을 안고 있다. 성격도 다르고 출생도 다른데 마치 하나의 실로 연결된 듯이 보여진다.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든다. 김만중이라는 한 사내가 마음속에 그렸던 여인상은 아니었을까? 한번쯤은 그런 여인들과 만나 이러저러한 사랑을 나누어보고 싶다는 사내의 감춰둔 욕망은 아니었을까? 형식과 체면의 허울에 싸인 사대부들의 욕망... 어쩌면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저 단순히 깨어보니 꿈이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닌 <구운몽九雲夢>을 보았다. 환생전의 성진이 불자였다고 하여 이 책이 불교적인 모습을 담고 있지는 않다. 또 모르겠다. 성진과 양소유를 깨닫기 전과 깨달음을 얻은 뒤의 모습으로 평가할 수 있을런지도...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꿈을 꿀 수도 있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