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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 외 ㅣ 재미있다! 우리 고전 10
장철문 지음, 이현미 그림, 박지원.이옥 원작 / 창비 / 2004년 12월
평점 :
박지원과 이 옥이라... 박지원이야 <열하일기>라는 대표적인 작품이 있으니 기억속에 남는다 하지만 이 옥이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우선 그것부터가 궁금해졌다. 이 옥, 정조 때의 문신으로 박지원처럼 문체반정에 연류되었다는 사람이다. 효령대군의 후손이라 하니 그 집안의 내력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고.. 그런데 문체를 다시 돌리라는 정조의 하문에 반성문을 썼던 박지원과는 달리 이 사람은 아마도 제 고집을 꺾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제의 인물로 낙인찍혀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다니 하는 말이다. 정조는 성균관 유생이던 이 옥에게도 전통적 격식을 갖춘 문장을 지어 바치도록 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세상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천박한 문체인 것일까? 전통적 예의와 도덕을 갖춘 문장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비롯되어진 문체반정..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문체반정이 가져온 우리 문화의 퇴보는 상당했을거라고 본다. 패관문학이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백성들의 참모습이었던 까닭에 어쩌면 왕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껄끄럽거나 불편한 진실이 될 수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책 속에는 박지원과 이 옥의 작품 일곱편이 실려있다. 박지원의 작품으로 <광문자전>, <허생전>, <양반전>, <호질>이 있으며 이 옥의 작품으로는 <최생원전>, <이홍전>, <심생전>이 있다. <허생전>이나 <양반전>, <호질>은 많이 들어 낯설지 않았으나 이 옥의 작품은 생소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우리 고전을 읽게하고 싶은 마음이 비쳐지는 책이라 그리 어렵지않게 고전으로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대부분 학창시절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우리 고전의 내용을 다시한번 살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 가까이 하게 된 책이지만 사실 아들녀석에게 읽히고픈 욕심이 더 컸다. 어느 책에선가 말하길 박지원의 <양반전>이 신분제도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것임을 숨겨두었다고 했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면이 느껴지기도 한다. <허생전>을 통해서도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있었다. 단순히 책만 읽던 선비가 어느날 갑짜기 책상을 물리고 세상속으로 나아가 성공한다는 것은 살아내야 할 현실이 그렇게 쉽게 용납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생은 책상물림만 하는 양반이기를 고집하고 있다. 어찌보면 <호질>에서 보여지듯이 요목조목 따지고드는 호랑이의 말투를 빌어 양반을 혼내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자신들만의 어떤 명분을 또박또박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옥의 작품을 둘러보면서 미신타파라는 화두를 보게 된다. 귀신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 자체가 자신의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니. 귀신조차 무서워했다는 최생원의 이야기가 그렇다. 천하의 사기꾼 이홍은 또 어떤가? 사람의 마음만큼 묘한 것도 없고, 사람의 마음만큼 허술한 것도 없는 듯 하다. 빈 틈을 노려 치고 들어가 자신의 허세를 당당하게 이루는 이홍이 왠지 나는 밉지만은 않았다. 또한 <심생전>을 통해 보여주는 사랑의 의미가 살갑게 와닿기도 한다. 물론 유치한 사랑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린다면 할 말은 없겠으나 심생의 사랑은 꽤나 괜찮게 보여진다.
그저 옛글만 다루어주었더라면 이 책도 그냥 그렇고 그런 책으로 끝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의 작품 해설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박지원과 이 옥의 작품 뒤에는 왜 '전傳'이라는 말이 붙어 있을까? 옛날에는 소설이라는 문학양식이 없었는데 오늘날의 소설과 비슷한 문학양식으로 '전'이 있었다고 설명해주고 있다. 오늘의 단편소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문단편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설명을 보면 모두가 아하,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고전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그것에 맞는 풀이가 없기 깨문이다. 어려운 한자체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더더욱 다가서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되어지는 부분들을 조금씩이나마 알기 쉽게 풀이를 해 준다면 그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작품해설을 이 소설들의 시대적 배경 또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아울러 박지원과 이 옥의 작품세계를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인지 다시한번 집어주니 우리의 고전을 그저 그런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며 외면하지는 않을 듯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