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혼자 올 수 있니
이석주 사진, 강성은 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폐암까지 전이된 몸을 이끌고 홀로 겨울 홋카이도와 아키타 여행을 다녀온 후 눈(雪)에 관한 사진전을 준비하던 2010년 4월, 만 스물여덟의 나이에 하늘로 돌아갔다. 이석주라는 스물여덟의 젊은이를 그렇게 보내면서 그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오래도록 속깊은 울음을 참아야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들은 사랑했던 사람 하나를 추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그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었던거라고... 흐릿한 분위기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그리 많지 않은 말을 하는 걸 보면 어쩌면 그들은 아직도 그를 보내지 못한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다가온 이 책의 느낌은 너무 멀었다. 너무 아득했고 너무 흐렸다.

가로등...
오직 가로등빛 뿐이었다. 모든 것이 온통 잿빛이었는데 문득 다가오던 그 빛 하나. 하지만 나는 안다. 가로등은 저혼자 빛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어둠이 있어야 더 밝아질 수 있는 불빛, 그것이 바로 가로등인 것이다. 오직 그 빛 하나만이 밝게 보여지던 사진속의 분위기가 낯선 설렘으로 다가선다. 책 속에서 들려주던 가방이야기처럼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서로를 그리는 아픔이 어느 순간 내게 찾아왔던 첫사랑 같았다. 사진 찍었던 사람이 시작될 것 같다고 말하던 사랑은 찾아왔을까? 속으로 우는 건 아무도 모를 거라고 그렇게 매일 울고 있는거냐고 묻고 있던 당신에게 나도 묻고 싶었다. 당신도 그렇게 매일 울고 있었던 거냐고.

한때는 염전이었던 곳이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을 했다는 그곳에 내가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아직 버리지 못한 갯벌흙은 밟으니 미끄러워서 옆에 가는 사람끼리 두 손을 꼭잡고 걸어야 했었던 날.. 저 집, 영화속에 나오는 집같아... 고개를 들었던 순간 느닷없이 시선속으로 들어왔던 집을 보면서 내가 말했었다. 말하다가 그만 미끄러져 기우뚱거렸을 때 잡힌 손에서 우두둑 소리가 날 것처럼 단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집, 영화속에 나오는 집처럼 멋지게 보였던 집은 가까이 다가가보니 황홀할 것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내 눈에는 멋지게 보였는지 알 수 없다. 소금창고.. 나무로 된 문은 반쯤 열린 채 하얀 소금을 뱉어내고 있었지. 그리곤 내게 말했었다. 맛있는 소금이라고. 이제는 몇 평 남겨두지 못한 염전에서 건져올린 거라고. 한웅큼 내게 내밀면서도 팔지는 않는다고 했었다. 소금창고.. 팔지 않는 소금을 모아두던 소금창고.. 그런데 내가 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왠지 모를 상실감, 그리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을 그 소금창고처럼 안고있는 사진들때문이었을까?  보여주는 사진들은 너무 외롭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사람의 가슴처럼 그냥 먹먹해지는 느낌들이 빼곡하다. 사진이 그런건지, 사진 옆에서 꼬물거리는 글자들이 그런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독한 외로움은 분명히 보였다. 내 기억속의 소금창고처럼.

불꽃놀이..
죽음을 선고 받았으면서도 그는 사진을 찍으러 떠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단다. 사진이 빛을 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비워내는 작업임을 알아가고 있는것 같다고. 어쩌면 그는 사그러드는 제 빛을 더 밝히고 싶어 다른 빛을 비워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몇 장을 사진을 모아놓고 그 덩어리마다 제목을 붙여주었는데 사랑이니 상실이니 뭐 그런거였다. 그래놓고는 너 혼자 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 쓸쓸하게... 소리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이 더 슬프다던 말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것들.. 그래서일까? 이 책속에서 비워낸 빛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불꽃놀이 속에서 터지는 불꽃처럼 어쩌면 그렇게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건지도 모르겠다. 터지고나면 공중분해되어 버리는 불꽃이라 할지라도 잠시 그렇게 빛을, 희망을 끌어안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춧불..
아주 작은 촛불이 있었다. 그 촛불을 끄고 자장가를 부를 때가 되었나보다. 어쩌면 사진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그 사람의 이야기들은 이런게 아니었을까? 왕자와 공주가 만나는 이야기, 먼 나라의 가난한 소녀가 맞은 성탄절 이야기, 새가 물어다 준 마법반지 이야기,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 이야기, 성냥하나로 세계를 태워버린 아이의 이야기, 기러기를 타고 먼 나라를 여행하는 이야기, 기억이 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들...(-243쪽) 지독히도 일상적인 것들을 제 몸을 불사르는 촛불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눈 쌓인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마다 머리속에 그려지고 있을 그 세계가 궁금해진다. 어떤 이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 하나를 그려볼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눈때문에 날아가버린 하루벌이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막 시작된 사랑이 그 눈위에 나란히 발자욱을 남기는 상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때로는 희망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옷을 바꿔입는다. 많은 이야기를 잉태할 수 있는 사진 한 장.. 그러나 그 사진 한 장이 뱉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나나 당신이 지금 어떤 현실속에 머물고 있느냐만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기에. 대체적으로 책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은 아련하다.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놓고 싶지 않아 한번은 더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느낌일 뿐이다. 그것도 한 순간의 느낌일 뿐이다.

글이 사진을 따라간건지, 사진이 글을 따라간건지 그것을 나는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싶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여행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 여행을 함께 느끼고 싶었을거라고 미루어 짐작을 하면서도 그렇게 말하면 왠지 미안해질 것만 같다. 사진이 빛을 비웠다고 글도 빛을 비워버린 것 같아서... 아주 잠깐이지만 사진이 한 켠으로 밀어둔 그 빛을 찾아 글이 밝혀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사진도 글도 모두가 아득하기만 하다. 다시오지 않을 사람을 향한 기다림이 이 책의 화두같다. 어쩌면 그렇게 느끼게끔 길안내를 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서 이 책은 우물처럼 자꾸만 나를 저 깊숙한 곳으로 밀어넣는다. 책장을 덮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우물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아주 작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