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사실과 허구를 아우르는 팩션이라는 게 흥미로웠다. 추리소설 내지는 환타지? 이렇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가슴속에 뭉클하게 올라오던 무언가가 있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자꾸만 치고 올라오려 했다. 그것을 눌러내리기를 몇 번, 나는 결국 한숨을 후우, 내뱉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 당신들은 당신들의 조상이 기록한 문서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민족이오"라는 말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단지 한 편의 소설속에 쓰여진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공감한다. 당연히 그럴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에서도 대화중에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 중 어느쪽에 더 신빙성이 있을까?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를 단순히 기록이라고 말하는 시대는 아닌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삼국사기>보다는 <삼국유사>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 나의 심정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관점은 달라지는 것이 맞는 말일테니.. 어찌되었든 이 책은 정말 흥미롭다.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상당히 강하다. 고전을 빌미로 엉켜드는 모든 사건들은 다시 고전을 통해 풀려진다. 실은 엉키게 한 자가 풀어야 한다는 이치다. 그런데 그 전개방식이 기가 막히다. 책을 읽는 내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던 궁금증 하나를 풀어보기 위해 검색해보기를 몇 번, 실력이 없는 탓인지 제대로 찾아내질 못했다.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김유신 묘 진위사건.. 1968년 이병도라는 사람이 조선일보에 기재해서 세상에 논란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너무 오래된 일인 까닭인지 제대로 찾아지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로써 한국의 역사와 사상, 문화에 관해 실증적·객관적 방법을 중시하는 실증사학(實證史學)을 추구하여 한국근대사학이 성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된다는 말과 함께 소개되어진 그의 책들도 엄청났다. 1968년에는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 유명한 전태일이라는 이름과 김신조 청와대 피습사건이라는 말들이 1968년이라는 시대속에서 보인다. 역사적 진실속에서 잉태되어지는 끔찍한 예고살인의 형식은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기도 한다. 먼 미래였을 지금의 시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손의 입을 빌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조상들의 서글픔.. 일제 강점기를 다룬 이야기였기에 가능했을까? 엉켜있는 씨줄 날줄의 끝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반전의 매력이 최고조를 이루게 되는 마지막 부분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처음부터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화자의 존재.. 우리의 역사를 파헤져가는 시선이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라는 점은 아이러니였다. 왜 우리가 아니라 일본인이어야만 했을까? 왜 우리는 그저 방관자로써만 존재하는가? 그렇지만 사실이 그랬을테니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며 쫓아가는 나의 마음은 내내 불안했다. 결국 그거였구나, 싶었던 대목을 앞에두고서 나는 부끄러웠다. 내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치고 달리는 저자의 상상력은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사건의 추이를 유추해가며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숨을 헐떡이게 된다. 그리고 오싹하는 공포를 함께 느끼게 된다. 책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그 분위기가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까닭이다. 머리만 발견된 미이라의 움직임이라거나 머리잘린 시체를 표현하는 그 문장들이 이채롭다.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고전과의 싸움.. <삼국유사>에, <삼국사기>에 저런 내용도 있었구나 싶어 안목을 넓히지 못하는 나를 탓해보기도 한다. 우리의 신화와 설화가 적절하게 잘 조화를 이루어내며 곳곳에 숨겨놓은 지뢰와 같은 복선들.. 몇 번씩 그 지뢰를 밟아 터뜨리며 내 몸이 망가질 때쯤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느껴야 하는 부끄러움을 저자는 내 앞에 떡하니 남겨놓는다. 감정적인 것을 내세우기보다는 이성적인 사고와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나치의 그 잔혹한 유대인 학살 현장속에서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듯이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일제 강점기속에서도 학자로써의 양심을 내세워 우리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강하게 흐르는 물살처럼 그렇게 빠져드는 나를 보게 된다. 무작위로 도굴되는 우리의 유적들. 전문지식도 없는 사람에 의해 도굴된 우리의 문화유산들은 총독부로 들어갔고 들어간 문화재는 다시 경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일본은 우리의 문화만 말살시켰던 게 아니었다. 산맥의 혈을 막아 우리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쇠말뚝까지 박았다. 지금도 찾아내지 못한 쇠말뚝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는데... 일본인 겐지의 말이 떠오른다. -의식은 항상 현실에 있지않고 노래나 그림따위에만 담겨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던 말... -정작 필요할 때는 현실에서 도망가버린다-던 말... 참으로 서글픈 말이 아닐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들은 사물의 본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물로 인해 얽힌 인간의 의지만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던 그의 말은 작금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고전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라서 혹자는 따분하거나 재미없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속에서 찾아낸 메세지는 정말 많았다.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 우리가 잊고 사는 우리문화에 대한 인식.. 우리의 역사속에 지금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정답이 들어있다던 어느 유명인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 홀대하고 있다고... 현실속에 난무하는 문제에 대한 정답과 해답이 들어있다던 그 역사,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껴안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저 기록일뿐인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하기에... 한 편의 소설이 주는 감동은 컸다. 멋진 작품이었다. 10년 이상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다는 저자.. 러시아 여인의 몸매에 변형된 일본식 갑옷을 입은 정체불명의 북유럽 요정들이 우리 젊은이 문화의 현실임에 소심한 울분이 터졌다는 저자는 우리 이야기를 하며 놀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의 것으로 이야기판을 벌이는 스토리텔러로 살고자 한다던 저자에게 진정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