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놀라움은 책장을 펼치지마자 찾아왔다. '국가의 명예에 큰 손상을 입히고 자신들에게도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는 저자의 말.. 우리에게도 한때는 노래한소절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다고는 해도 출판사가 글을 쓴 사람을 고소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나라의 특성상 그럴수도 있다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말이다. 책을 펼치면 읽게 되는 한국독자에게 전하는 글쓴이의 말은 정말이지 참담하기까지 했다. 현실인 것과 동시에 꿈을 쓴 것이라던 말을 이해하기까지 숨을 죽이며 읽었던 것 같다.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을 쓰고자 했다던 그의 말처럼 이 책속에는 탐욕이라는 거대괴물에게 짓밟히는 한없이 여리고 작은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생각했던 말은 '참담하다'는 거였다. 말 그대로 끔찍하고 절망적이었다. 말 그대로 너무나도 슬프고 괴로운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면서도 무지함에 대해 어쩔 수 없는 한심함을 느껴야 했다. 모른다는 것이 죄일까? 가난이라는 것이 죄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그 관념의 차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게 두려워지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야기의 소재는 에이즈다. 그러나 그 에이즈를 불러오게 만드는 매개체는 국가였다. 자신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매혈운동을 장려하고 그 매혈운동으로 인하여 열병이 번지는데도 국가는 그들을 버렸다. 아주 처참하게 무너져가는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성은 열병과 함께 죽어간다. 그런 와중에서도 매혈우두머리들은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들만의 성을 구축해 나간다. 너도나도 사람들의 피를 얻어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하여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그들은 다시 피를 뽑아낸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오래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 때문이었다. 목숨과도 같은 피를 팔아서 가족들을 부양해 왔다던 허삼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변해가는 시대를 읽고 싶었었다. 그리고 거기에 존재하는 인간의 마음을 찾아보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었다. 그 책을 읽지 못했기에 이 <딩씨마을의 꿈>은 상당히 유혹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
어떤 상황이 와도 끝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탐욕일까? 갖지 못했던 자들의 소유욕은 정말 대단하다. 아흔아홉개를 가지고도 마져 채우지 못한 한 개때문에 허덕인다는 인간의 탐욕.. 한번 맛들이면 벗어날 수 없는 늪이 탐욕의 늪이라고 했던가? 딩씨마을의 딩수이할아버지는 마을의 지도자겪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이어주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아주 조금이나마 글을 안다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더 쉽게 말한다면 국가에게 이용당하는 국민의 꿈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용하는 탐욕의 화신은 딩수이할아버지의 큰아들 딩후이다. 그 두사람을 통해 보여지는 이성과 감정의 차이는 대단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끝내 아들의 뒷통수를 깨뜨려 죽게 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어쩌면 현실보다는 꿈을 갖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더 큰 꿈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작가의 마음을 얼핏 본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의 화자가 이미 죽은 딩수이할아버지의 손자라는 거다. 아버지 딩후이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원한으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죽게되는 어린 영혼의 눈으로 말할 수 없이 지독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시선이 순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일전에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와 <눈 뜬자들의 도시>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도시풍경이 오버랩되었다는 말이 더 솔직할 게다. 한 건물에 모여살게 된 그들은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욕심채우기에 급급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한 권력을 원했다. 눈 뜨고는 할 수 없었던 일들조차도 서슴치 않았었다. 살인과 사랑이 공존하는 빛과 어둠의 그 명백한 대비..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 눈을 떳을 때 그들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누군가가 나서서 그 기억을 지워줄 수만 있다면 이번에도 역시 무슨 일이든 할 것처럼... 매혈로 인하여 열병이 걸렸던 딩씨마을사람들이 학교에서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과 달리 점점 변해가는 그들만의 삶.. 망가져가는 그들의 사고.. 그런 중에도 사랑은 싹트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가슴앓이를 하기도 한다. 이미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권력이라는 힘을 갖고 싶어했다. 정말이지 참담했다!
이미 먼저 나온 작품이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판금조치를 당하기도 했다던 작가는 이 책 역시 판금조치를 당했고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글쓴이의 비상(飛上)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현실인 동시에 꿈이기도 했고, 어둠인 동시에 빛이기도 했고, 환멸인 동시에 여명이기도 했다던 글쓴이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새의 몸부림을 느껴달라던, 그 몸부림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울음과 잠꼬대를 조용히 경청해 달라던 글쓴이의 당부가 왠지 무섭게만 느껴진다. 그토록이나 처절한 고통을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랑을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 또한 놀라웠다. 작가가 목숨걸고 썼다는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럽고 누구 때문에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기에.. 우리는 무엇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로지 내 삶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타인의 삶에 의하여 내 삶이 만들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이 있기에 나는 그저 살아지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