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4 - 하늘가의 방랑객 길 없는 길 (여백) 4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길게 왔다. 드디어 마지막 길..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에 대해 그리고 가야산 해인사가 대장경의 원래 주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수천만개의 글자가 한결같이 고르고 정밀하여 마치도 한사람이 쓴 것 같다고, 서각 예술품으로서 가장 위대한 문화 유산중의 하나라고... 그리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런데 강화도에서 만들어진 이 대장경이 어째서 한양을 거쳐 가야산 해인사로 가게 되었던 것일까? 고려 현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한다는 이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된 동기가 가히 의뭉스럽게 느껴진다. 몽고의 공격으로 나라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져 백성들의 삶은 참담해졌는데도 강화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잘라 바닷물에 담그고 3년을 기다려 꺼내 켜고 말려 대패질을 하고 경문을 붓으로 쓰고 그것을 칼로 한 자 한 자 새겨나가고 있었다니..  싸워서 적을 물리치기보다는 대장경을 새겨 불력의 신통력으로 몽고군을 물러가게 할 수 있을거라는 그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란 말인지..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라는데 도대체 그 생각자체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원래 강화도에 있었던 것이 한양을 거쳐 해인사로 옮겨지게 된 이유는 첫째, 해인사가 속대장경을 발간하였던 대각국사 의천과 인연이 깊었던 까닭이다. 해인사는 그가 한때 머물며 열반에 들 것을 꿈꾸었던 도솔천이라는 사실이고 둘째, 강화도가 왜구의 노략질 앞에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왜구들은 수전에도 능했지만 불교를 숭상하는 민족이었던 까닭에 이 대장경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셋째, 가야산이 신령한 곳이며 해인사가 교통이 불편한 심산유벽이어서 외적의 침입을 받지 못할 피난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불교에 의해 흥하고 불교에 의해 멸망한 그 왕국 고려는 어디에 있는가. 그토록이나 신통한 불력을 의지하여 힘겨운 경판에 경문을 새겼던 그 나라는 어디로 갔는가 말이다. 말()이 말()을 이기고 문자()가 문자()를 이기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이다. 먹지않은 소쩍새가 '솥적다' 말을 하네... 한 구절의 말이 문득 가슴속에 깊은 앙금을 남긴다. 먹지않은 소쩍새가 '솥적다' 말을 하네... 항상 길이란 그러하지 아니한가.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여 돌아가고 싶어도 온 길이 아까워 계속 나아가고 있을 뿐.. (-128쪽)  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커다란 우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가 다시 불을 밝혀야 함에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고 자꾸만 뒤돌아보며 뒤뚱거리는 것은 아닌지.. 온 길이 아까워 잘 못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은 건 아닌지.. "어떤 것이 해탈(解脫)입니까?" - "누가 그대를 속박하였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어떤 것이 열반(涅槃)입니까?" -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는가" (-102쪽)  다시 생각해보아도 말과 글이 먼저가 아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불교를 이야기하며 더불어 기독교가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이가 카톨릭 신자였기에 가능했으리라.. 경허스님을 따라가 그를 암송할 때마다 사제들의 암송도 함께 들려주고 있으니 여러 이름과 여러 갈래를 가고는 있지만 종교라는 참의미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것을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인간들이 저 좋은대로 갈라놓은 길 아닌 길이었음을 내가 알겠다. 後人..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이것을 남긴다.. 경허가 남긴 마지막 글을 보면서 경허를 뒤따르던 강 빈은 마침내 길을 찾았다. 일곱 알의 염주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그리하여 그 자신이 그토록이나 알고 싶었던 것에서부터 놓여짐을 얻게 되었다. 그것도 해탈이라면 해탈일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50쪽), 고 했으니...

경허라는 화두를 쫓아가는 강 빈의 힘겨운 뒷태를 쫓아 나 역시도 헉헉거리며 뒤따랐던 먼 여행길이었다. 불교라는 종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따라다녔던 그 길위에서 돌부리에 채여 상처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 뜻깊은 여행이었다.  왕족의 피가 흐른다던 아버지로부터 일곱 알의 염주를 받아 들었던 그 어린나이에서부터 이제는 불혹의 나이까지 와버렸으나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던 그 알 수 없는 무거움..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단지 만공이라는 스님을 찾아갔다가 경허라는 화두를 내려받게 되었던 강 빈 교수.. 그에게 화두를 내려주었던 법명스님조차도 끝내는 그에게 말없는 이별을 고하고.. 허탈하게 돌아섰던 발걸음을 되돌려 그 무거웠던 일곱 알의 염주를 넘겨주고 돌아오던 강 빈의 가슴속은 후련했을까?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내려놓고, 또한 어머니를 내려놓았으니 그는 이제 가벼워졌을게다... /아이비생각 

"어떤 것이 해탈(解脫)입니까"  "누가 그대를 속박하였는가"
"어떤 것이 정토(淨土)입니까"  "누가 그대를 더럽혔는가"
"어떤 것이 열반(涅槃)입니까"  "누가 그대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는가"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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