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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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장자, 효종의 형. 병자호란때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감. 십년 가까이 청나라의 심양관에 머물며 청나라와 조선의 창구역할을 함.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망해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 서양인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됨. 이후 여러 방면으로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두 달만에 죽음.. 소현세자에 대한 것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말들. 이쯤에서 나는 항상 궁금했었다. 과연 아비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당쟁의 희생물이었는지. 이제와 그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제 아비에게 독살을 당했다는 후세의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역사속의 한사람. 소현세자가  청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아비가 아들을 의심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자신의 손자까지 모두 없애버릴 수 있었던 것이 아비 인조였을까?  "저하께서 적의 나라에 오래 계셔서 주먹을 쥐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허면 칼 쓰고 활쏘는 법은 배우셨습니까? 군자는 마음의 길을 닦아 그 길로 성현의 도리에 이름입니다" (-151쪽)  청나라가 자신의 아들을 더 많이 믿는다는 이유로 아들을 미워했다기 보다는 망해가는 명나라를 철저하게 받들어 모셨던, 그리하여 망해버린 명나라와의 의리라는 부질없는 명분에 자신을 묶어버린 신하들에 의해서였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대부들은 그렇게도 마음의 도를 잘 닦아 조선을 그모양 그 꼴로 만들었던 것인가?

그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161쪽)  하지만 이 책속에는 그 지긋지긋한 당파는 보이지 않는다. 그토록 분분했던 당쟁조차도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조선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병자호란을 겪어낸 왕이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청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머리를 조아릴 때에도 실속없는 명분들은 바람처럼 그렇게 왕을 휘감았었다. 그 때에 볼모가 되어 청나라로 끌려갔지만 그는 기다림을 배워야 함을 알았다. 조선을 위해서. 조선을 사랑했으므로.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끝이었다. 청나라로 끌려갔던 세자가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진 소견으로 환국했다고만 말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돌아왔으나 끝내는 죽어야만 했다고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 <소현>은 거기서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세자로써 모든 것을 받아 내야만 했던 한 남자의 속깊은 아픔을 끄집어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간과했던 그 고독을 쓰다듬어주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심기원의 아들 석경과 회은군 이덕인의 딸 흔... 병자호란뒤에 최명길과 동조하면서 권력을 잡았던 이가 심기원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어쩌다 볼모가 되어 떠나는 세자의 뒤를 따르게 되었는가. 끝내는 회은군을 추대하는 역모죄로 처형됨으로써 그의 아들까지도 목숨을 잃게 된다. 그 심석경이 세자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진정한 충의였을까? 끝내는 역모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두게 되는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죽어가야 했던 석경은 어쩌면 또하나의 세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조선 반가의 여인이었으나, 그것도 종실의 피를 받은 여인이었으나 전쟁의 화마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끝내는 버리지 못한 육신을 끌어안은 채 죽고자 했으나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흔이라는 여인.. 뛰어난 미색으로 적국의 황제에게 받쳐졌으나 다시 그 황제의 신하에게 하사되어진, 그리하여 기쁠 흔자를 이름으로 얻게 되었던 그 여인을 향한 압박이 어쩌면 세자를 향한 칼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석경과 흔이 서로의 마음을 받았다. 외로웠기에 그랬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국의 말을 배우고 충정이라는 거짓된 허울로 세자곁에 머물면서도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알았을 게다. 그 거짓된 충정을 의심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던 세자 또한 외로웠을 게다. 아우 봉림대군이 곁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서로에게 지워진 짐의 무게가 너무나도 달랐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아팠고 고독했다. 기다려야 한다고, 기다리다보면 때가 올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그 마음은 적국인 청나라에 머물지도 못했고 제나라 조선속에도 있지 못했다. 통한이 무엇을 일컫는 글자였는지도 이제 알겠구나. 적들이 모든 것의 위에 선 이 때에 내가 비로소 그것을 안다. 허나, 잊지 않은 것 중의 가장 큰 것이 어찌 굴욕이겠느냐. 내가 저들이 어떻게 이겨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잊지 않으리라. 잊지않음이 굴욕을 삼키는 길이 되더라도, 그리하리라 (- 327쪽)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도 먹먹했다.  책 속으로 들어가 세자의 손을 잡아주고 싶으리만큼 먹먹했다. 왕재이기기에 앞서, 세자이기에 앞서 그도 한 남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왜 모른척 해야 했던 것인지.. 책속에는 많은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잭속에는 또한 많은 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 흐름을 따라 세자 소현을 봐달라고 그렇게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만이 있을뿐이다. 그 강물 따라 흘러가며 굽이치면 굽이치는대로, 쏟아져내리면 쏟아져내리는대로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한 남자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김 훈의 <남한산성>이 생각났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성문을 빠져나갔던 서날쇠의 나라와 여기 <소현>속에서 노비였다 청의 역관이 되어 살아남았던 만상의 나라는 어디였을까? 그들에게 나라는 무엇을 해 주었을까?  그들의 가슴속에서도 조선이라는 나라는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명분아래 깔려 신음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그 명분을 내려놓지 못한 채 제 한몸의 안위만을 생각해야 했던 벼슬아치들의 모습이 작금의 현실과 겹쳐지는 까닭은 또 왜인가?  전쟁보다도 정치를 알게 되었다던 적국의 장수 도르곤의 말이 세자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으리라. 흔하고 뻔한 조선사를 생각했다면 어디쯤에서부터 맥락을 잡아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저 조용히 끝까지 책장을 넘겨보기 바란다. 그 넘어가는 책장의 소리속에 소현세자의 숨소리가 들려올테니...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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