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2 - 불타는 집 길 없는 길 (여백) 2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산중의 납자를 만나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오십시오. 오시고 싶을 때면 언제든 소식도 없이 찾아오십시오. 혼자서 오시고 싶으시면 혼자서 오시고, 누구랑 같이 오시고 싶으시면 함께 오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단지 그 말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아내를 따라나선 청계사 가는 길.. 40여년만에 찾은 그 길 위에서 다시 만나는 어린 시절의 짧은 단면이 그에게는 몹시도 힘겨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힘겹게 하는 것이 어디 하나 둘뿐이겠는가마는 굳이 예정에도 없이 법명스님을 찾아가던 강 빈의 저 깊은 속내를 짚어볼 수 있기를 바랬다. 그가 힘겨움에 어쩌지 못한 채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갈구하던 것, 그것은 곧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경허스님의 화두와 다를게 없었음이다. 늙고 야윈 손하나가 불혹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내내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는 것이 그는 화가 났을 것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끌어안지도 못한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 어디에도 내려놓지 못한 채 방황하던... 그가 아버지 의친왕이 정표로 주었던 그 일곱알의 염주를 법명스님에게 진정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이 이르는 곳에는 꽃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저 속세와 청산은 어느 곳이 옳은가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다. 봄볕이 비치면 속세에도 청산에도 꽃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청산이니 진세니 어느곳이 옳은가 시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 꽃이 피는가 그 꽃피는 곳을 찾아가려 할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봄볕을 발견해야 한다. (-261쪽) 자신을 찾아와 병이 들었다고 말하며 출가의 뜻을 비추던 강 빈에게 법명스님이 해 주었던 말은 정말이지 가슴깊은 울림이 전해졌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피하고 싶어하는지 이미 알고 마음을 읽어버린 법명스님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을 어찌할까..

거문고가 안고 있는 비밀을 찾아 낸다면 마음속의 짐을 조금은 덜 수 있을까, 혹시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더 무거운 짐을 지우고 말았다. 경허라는 이름과 강 빈이라는 이름이 왠지 내게는 같은 의미처럼 다가왔다. 결코 학문으로써, 문자로써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 교화의 길이라는 것을 역병으로 죽어나가던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찾아냈던 경허. 그 길로 강원을 폐하고 자신만의 화두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것들로부터 자신을 위폐시켜버린 경허. 두번째 길속에서는 우리가 어찌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그 깨달음을 얻으면 어찌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음이다.  동쪽의 나라에 법도가 전해지기 위한 길은 멀고도 멀었다. 몇대손, 몇대손을 따지기 이전에 앞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만약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 때는 수레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92쪽) 대를 이어 내려오는 법통을 하나씩 살펴 보여주면서도 놓치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어떻게 대오각성의 순간을 맞이했는지, 또한 그들이 제자들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것을 전파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들도 함께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日面佛 月面佛.. 매일매일이 좋은 햇님, 매일매일이 좋은 달님..

"도는 닦아 익힐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더러움에 물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나고 죽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별난 짓을 벌이는 것을 바로 더러움에 물든다고 하는 것이다. 단번에 도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평소의 마음이 바로 도이다. '평소의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그것은 일부러 짐짓 꾸미지 않고 이러니저러니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마음에 드는 것만을 좋아하지도 않고 단견상견 斷見常見을 버리며 평범하다느니, 성스럽다느니 하는 생각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마음을 가리킨다. 범부처럼 행하지 않고 성인 현자처럼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보살행인 것이다." (-99 ~ 100쪽)  '平常心''라는 말은 의외였다. 말로만 있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라는 존재에게 점차 다가오는 법맥의 흐름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나에게 좀 더 가까이 오기 위해, 오직 나로 인함을 말해주고 있는 그 흐름이 나는 좋았다. 利他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재하고 있는 듯 살아가고 있는, 경전이라는 것이 하나의 도구처럼 쓰여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속에서 뜬구름처럼 아련하기만 한 것이 믿음의 실체라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일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조금은 따분하게 느껴졌을 두번째의 길이 적어도 내게는  밝아 보였다.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과거는 감이 없으며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으니 ... (-362쪽)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순간이다. 그러니 지금 나의 마음을 다시한번 챙겨볼 일이다. 생각해보면 작가가 보여주는 두번째 길은 수행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이기도 하며  깨달음을 얻은 이로써 해야 할 수행의 길이다. 平常心... 범부처럼도 성인현자처럼도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인 것이다. 내 안에 머무는 내 마음.. 내 것이면서도 내것이 아닌 그것... 그 마음을 진정으로 내가 취할 수 있어 그 마음을 다듬으며 살아가야 하는거라고 말해주고 있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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