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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김의담 글, 남수진.조서연 그림 / 글로벌콘텐츠 / 2010년 4월
평점 :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을 때 흔들리는 차안에서 조용히 끄적거립니다. 모두 어디로 갔는지 혼자 마시는 커피의 향이 왠지 서글픔으로 다가설 때 곁에 있는 메모지에 뭔가를 끄적거리게 됩니다.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던 날의 그 소소한 쓸쓸함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면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희망과 연결된 또하나의 고리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랬던 나의 감정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하나둘씩 모여든 친구들이 한점씩의 삽화를 보태준다면 나의 글은 좀 더 멋지고 좀 더 분위기 있는 장면을 연출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생각을 합니다. 길을 걸으며 생각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생각하기도 하고, 하물며 타인과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생각속에는 온전한 내가 들어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내 안의 내 의지대로만 움직여질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이 책은 한 여자가 문득문득 끄적거린 메모장 같기도 하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쓴 끊어진 일기장 같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쩐 일인지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책장을 넘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신안에 살고 있는 괴물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체는 보이지 않고 안개처럼 희미한 형상만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떤 괴물인지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그 괴물과 맞대면 할 자신이 없는 것처럼도 느껴집니다.
가끔 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질까 궁금하다. 그리고 또 가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고 없다면 사람들은 날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하고 생각한다. 51쪽에 나와 있는 문구입니다. 나 역시도 이런 생각 많이 해 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없어진다면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적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흔한 생각,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아주 흔한 일상속의 느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독하게 주관적인 듯 하면서도 왠지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한소절의 넋두리입니다. 왕십리행 마을버스를 탔던 누추한 아낙과 손자를 바라보는 동정의 시선, 끝도없이 뱉어내는 사랑의 맹세를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불신, 5일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그 장소를 떠나지 않았던 쓰라린 기다림의 아픔, 탐욕과 기대치에 허물어져 버리는 자신만의 특별함,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채 밖으로 나가길 두려워하는 단절... 모두가 우리안에서 집을 지은 채 나가려 하지 않는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속에 상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걷다보면 넘어질 때가 있고 그러면 손을 툴툴 털고 일어선다는 의지도 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약으로 나의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인생에서 지키고 싶은 열가지가 뭐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녀만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 있어 그 끈들이 모여 또하나의 긴 띠가 될 수 있는 그런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을 서원해 봅니다. 우리가 자주 말하곤 하는 어린왕자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길들여짐과 적응의 차이점을 말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아니 그렇다고해서 뜻이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길들여짐과 적응의 차이점을 앞세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니까요. 모든 일에 만능인 사람이나 모든 일에 서툰 사람이나 저마다의 인생에 어떤 색으로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그녀는 고기를 굽다가도 삶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도 진리가 담겨있었다는 걸 눈치채기도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공존과 양보가 있어야만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테니까요. 많은 돈과 멋진 차와 멋진 집, 이런 조건들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라는 뻔한 진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각자 얼만큼의 깊이로 받아들이며 느끼는가의 차이겠지요..
자전거 자리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단지 스무개의 계단이 앞에 있다는 이유로 일년째 그 자리에서 1cm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세대의 자전거... 그녀의 말처럼 우리의 욕구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욕구가 있어 지금의 이 현실이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 같은 계단에 얽매인채 단 1cm도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꼬집어 주고 싶었을 겝니다. 그러니 다시한번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글 속에서 어쩌면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문구를 찾아냅니다. 저마다 이러니 저러니 떠드는 것은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음이니, 내가 그렇듯 고개를 끄덕여 호응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관심도 지나친 자존심도 모두 피곤하니 적당히 사는 것이 제일 좋다. 89쪽에서 본 문구입니다. 이 한권의 책을 내기 위해 무던히도 긴장했을 그녀의 마음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얼핏 생각해보니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일런지도 모르겠네요. 부드러운 글과 조금은 강렬한 느낌을 전해주었던 그림들.. 잘 어울어졌느냐고 묻지는 마시길...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