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 2012 마야력부터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
실비아 브라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2012년 12월 21일... 마야인의 달력을 참고 삼았다던 2012년 12월 21일... 정말로 세상의 종말이 오기는 올까? 어째서 사람들은 저토록이나 종말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던지듯이 세상이 망한다는 거에 한표씩 보태주는 것만 같은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는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종말론을 믿지 않는다. 가끔씩 세상이 나를 너무 힘겹게 할 때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져 버려라! 화를 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종말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일 세상이 망한다 할지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렇다면 나는? 가끔씩 재미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로 내일 세상이 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그다지 할 일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사는 것과 같이 내일도 똑같이 살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다들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는 반응이다. 아니 그럼 그 하루 이틀 사이에 무엇을 할 수 있는데? 그 하루 이틀 사이에 무엇을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의 모토는 항상 지금, 바로 이순간이 가장 중요하다이다.

왠지 흥미로울 것만 같았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외쳐대는 종말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선입견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 역시 종교적인 입장에서의 해석이 대세다. 우리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기독교, 유대교, 카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는 물론이고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조로아스터교, 오순절교, 침례교도 있다.  바하이교, 자이나교, 라스파리안교와 같은 낯선 이름들도 보인다. 종교, 참 많기도 하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찾아보면 정말 많은 종교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종교들이 모두가 제각각인 종말론을 들고 나온다. 참 대단하다. 기독교의 요한묵시록이나 다니엘서와 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가장 접하기 쉬운 문헌이기도 하지만 카톨릭계를 통해 알려졌던 파티마 예언, 성흔을 몸에 지니고 살았다던 파드레 비오의 이야기나 마리아 에스페란자와 같은 경우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유명인들의 예언들도 한 몫하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 아이작 뉴턴, 그리고리 라스푸틴, 아서 코난 도일 등 수많은 예언가들의 이름이 이 책속에서 거론되어진다. 과학자도 있고, 작가도 있는 걸 보면서 종말론이 어느 특정집단만의 광기라고 보기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종말론,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토록까지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종말론을 예견할 수 있다는 지금의 대표적인 현상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지구온난화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기상이변현상을 겪고 있는 지금의 현상만 보더라도 이의를 제기하기엔 좀 껄끄럽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그리고 또 지진이 일어나서...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단순히 기상이변이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세계의 정상들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지만 결국 아무런 답도 내지 못했다는 건 아직까지 우리는 인간본위의 세상을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맞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토록 많은 종말론의 근거와 예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연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아포칼립스가 세상의 자연적인 종말, 즉 어둠과 불화의 시대인 칼리시대를 의미한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힌두교의 예언을 한번 살펴보자면 이렇다. - 질서와 정의가 약해지고 말다툼이나 역병, 불치병, 기아, 가뭄, 참사가 일어날 것이며 사람들은 사악하고 분노로 가득하며 거짓되고 탐욕스럽다. 잘못된 교육, 검은 거래, 더러운 돈이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같이 믿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지식을 자랑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손쉽게 생계를 꾸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그토록이나 많은 예언들중에서 그래도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호피족이나 나바호족, 수우족, 라코타족, 체로키족과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예언을 다루었던 부분이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갔던 그들에게조차 세상의 종말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그들이 불러들인 종말이 아니라 문명을 앞세웠던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자연을 무시한채 오로지 인간의 편리와 이익만을 위해 밀어부치는 문명의 힘앞에서 그들이 무너져갔듯이 우리조차 그 문명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의해 멸망을 자초할 것이라는 말에는 나도 한표 던지고 싶다. 종말은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우리가 인간본위의 세상을 위해 살아가지만 않는다면 그다지 큰 소리를 내지 않을 것 같다. 종교계에서 흔히들 적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저자는 무관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악마가 득세한다"고. 지구를 오염시키고 동식물을 학대하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무관심. 그 무관심이 결국 우리를 파괴할 것이라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사이비종교도 많았지만 그들에 의해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거나 희생되어진 생명도 참 많았다. 그 참담한 죽음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끝난다. 쾅 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훌쩍거림으로.. -T.S 앨리엇의 말이다.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저자가 들려준 이 한마디는 정말이지 나의 시선을 붙잡아두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들려주었던 잉카 케로족의 축복 기도를 나도 소개해주고 싶다. 당신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가십시오. 강과 나무와 바위에서 배우십시오. 예수와 부처와 형제자매를 공경하십시오. 어머니 대지와 위대한 영혼을 공경하십시오. 당신 자신과 삼라만상을 찬양하십시오. 영혼의 눈으로 바라보고 본질에 다가가십시오.... 여러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가슴 찡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축복의 기도. 요즘 인기있는 <아바타>라는 영화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했던 'I see you - 나는 당신을 봅니다' 라는 말 때문에 종교계에서 시끄러웠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알라와 코란을 믿는다는 이슬람교의 무슬림조차도 예수를 존경하고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반드시 '그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 이라는 말로 경의를 표한다는 저자의 소개글을 읽으며 나는 저으기 놀랐다. 종교는 필요악이라고 단정짓곤하지만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경의를 표할 때 진정한 평화와 마음의 평온이 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다. 저자가 소개해 주었던 축복기도속에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가슴속에 깊이 와닿는다. 자연과 하나되는 삶,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삶을 산다면 종말론이라는 말은 없어질 것이다. 결국 종말론은 우리 스스로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 만들어낸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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