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와 산다 -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최민경 지음 / 현문미디어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달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내 속으로 들어왔다!  내 몸을 빌려갈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할머니의 빙의를 부정했던 은재에게 예지력과 같은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은재는 할머니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소설, 빙의를 다루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 단지 빙의라는 형식을 통해서 할머니와 은재의 공통점을 파고 들어가다보면 그들의 속깊은 사랑을 만나게 된다. 은재의 엄마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래서 두 아이를 입양했고 그 아이들이 은재와 은재의 동생 영재다. 여섯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엄마와 아빠의 가족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겹게 소통의 과정을 겪으며 지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장소설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으례히 청소년을 다루는 책이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네들이 겪어내야 하는 진통을 우리가 성장이라고 부르는 까닭일까? 하지만 알게 모르게 부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뭔가 조금씩 부족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부모중 한쪽이 없다거나 아니면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한다거나 이 책처럼 입양아라거나, 뭐 이런식의 배경이 나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제대로 된 환경을 가진 아이들도 똑같은 성장통을 겪는데 굳이 그런 배경을 아이들에게 깔아준다는 건 특별히 어떤 감각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읽힌다. 이렇다 할 거부반응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 흐름이 참 자연스럽다는 거였다. 우리가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정면으로 마주치기엔 왠지 껄끄러은 그런 소재를 잘 소화해내고 있는 듯 하다. 우리의 출판계에 일본소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에 가끔은 회의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뱉어내는 현실적인 감각, 그리고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정면승부라도 걸어볼 양 파헤쳐가는 그들의 시각이 나는 좋았었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문체라니... 그런데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통념처럼 치부해버리는 우리의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듯 보여진다.

은재와 영재가 처음 집을 찾았을 때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지만 온전히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마져 느껴진다. 은재의 보육원 시절과 영재가 집으로 들어와서도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만 하던 비뚤어진 모습속에는 우리가 모른 척 했던 아픔들이 들어 있었다. 누나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말하던 영재의 그 마음이 생겨나기까지 그 가족이 겪어야 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끝내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은재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어린 시절 자신에게 해외로 입양된 누나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해왔던 아빠에게도 그것은 분명 껄끄러운 진실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해외로 입양을 보내야했던 딸의 존재를 잊지 못하고 은재의 몸을 빌려 자신의 한을 풀려고 했던 할머니와, 엄마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지내야 했던 은재는 동병상련이었다고나 할 수 있을까? 그랬기에 좀 더 질긴 인연의 고리로 엮여 있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차분하게 하나씩 풀어나가는 방법이 참 편안하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겪는 일상이 은재의 주변에서 문제로 다가왔다가 스스로가 답을 찾아내는 현명함으로 마무리되어진다. 은재의 말처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피곤한 일일 것이다. 언제나 무슨일인가로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할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힘겨움을 오백원짜리 오뎅 하나와 뜨끈한 국물로 이겨낼 줄 아는 게 또한 성장의 과정이기도 할테다. 감춰두고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비밀 한가지씩은 가슴속에 감춰두고 산다고 한다. 울지않는 아이여서 너무나도 두려웠다는 엄마의 말처럼 그 비밀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속여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슬픈 일일 것이다. 버려야 했던 딸에 대한 그리움이 한으로 남았던 할머니와 자신을 만나고자 했던 생모에게 모질게 돌아서며 엄마의 품에서 크게 울어버렸던 은재에게는 어쩌면 그것이 삶을 지탱해주었던 힘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속에서 만나지는 껄끄러운 진실들이 내게는 참 좋은 느낌을 전해주었다. 입양이라는 진실, 그리고 그 입양이라는 말속에 숨겨진 가족간의 힘겨운 소통, 10대들의 방황속에 담겨진 두려움, 친구라는 의미를 통해서 자신들의 두려움을 해소해보고 싶어하는 10대들의 간절함..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바로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착각이 들게 만드는 문체가 나는 좋았다. 별 것 아닌데도 찔끔 눈물이 날 뻔한 부분도 있고, 실실거리며 웃음을 뱉어내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서도 샛길로 빠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역량이 부럽기도 했다. 흠이 있다면 너무 잘 짜여져 있는 것이라던 심사평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일단은 과격하지 않은 설정, 그냥 평범한 일상속에서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이 소설속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좋았다. 은재와 엄마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나, 그 싸우는 와중에서도 실질적인 입양이라는 낱말을 스스럼없이 뱉어내는 것도 놀라웠고, 실직한지 두달이나 되었으나 여전히 태평하게 버티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는 아빠의 모습, 공부라는 커다란 짐이 버겁기만 한 아이들이 제 나름대로 그 버거움을 해소해가는 과정도 별스러운 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콕콕 집어주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이러다 아빠가 시험에 떨어지면 우리 식구 뭐 먹고 사냐, 딱 두 번 시켜먹은 걸 가지고 단골이라고 우기냐, 같은 은재의 혼잣말은 은근슬쩍 재미있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내를 그대로 들춰내니 나도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않게 된다. 책속에서 보았던 말 중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하는 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이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다,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저마다의 비밀 하나쯤은 인정해주면서 살아가야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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