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 너도 나도 올라간다고 하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 그런데 가끔 나는 그런 서울에 대해 얼만큼이나 알고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여지는 그런 것들 말고. 개인적으로도 우리 문화에 대한 것들을 좋아하는 까닭에 이곳저곳 많이 들러보기도 했지만 어느곳엘 가더라도 오롯이 옛향기를 즐기고 싶다는 것이 나만의 욕심이었다는 결론뿐이었다. 새로이 복원되어진 흔적이 너무나도 많았던 탓이다. 옛 숨결을 느끼고 싶다고 찾아간다해도 내가 그곳에 대해 알고 가지 않으면 그저 오래된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의 저자가 책의 제목을 저렇게 정한 것은?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보면 무엇인가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들이 보여질수도 있다는 말일까? 나는 궁금했다. 은근한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슬쩍 웃음이 났다. 구어체 형식의 글들은 왠지 모르게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문화 해설가와 함께 간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긴다.
얼마전 나는 벼르고 벼르던 서울성곽걷기에 도전했었다. 오래도록 접근할 수 없었던 탓에 성곽이 보존도 잘 되어있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자연을 만나볼 수 있다는 말에 부푼 가슴을 안고 출발했었다. 이런 저런 상식을 끌어모아서 기억의 한쪽에 저장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와 정리해보니 내가 놓치고 온 것들은 참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을 따라가다보니 수박 겉핧기식의 탐방이었구나 하는 자책을 하게 되어버렸다. 서울과 한양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작가가 옛 지도를 펼쳐놓고 거기에 현재의 서울을 덧그려갔을 그 노선을 생각하자니 왠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작가의 노선을 따라가다보니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많았다. 내가 욕심을 내고 있는 노선이기도 하기에 좀 더 꼼꼼하게 책을 읽게 된다. 토씨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아주 오래전에 어린 아들녀석과 함께 전봉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답사를 해 본 적이 있었다. 전봉준이 태어나 자랐던 곳에서부터 녹두장군이 되기까지의 과정속에는 우리가 찾아보아야 할 곳이 참 많았었다. 처음으로 봉기했다던 그 감나무 아래에서 부패한 관리의 횡포를 참아낼 수 없어 일으켰던 고부민란을 생각하면서 나도 같이 울분을 느껴보기도 했었다. 돌아보는 동안 아주 가끔씩은 나도 전봉준을 따라 농민군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느껴보면서 말이다. 우리문화 답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몇 번을 강조하는 말이 바로 상상이다. 그 시대를 상상해보라는 것, 백프로 공감한다. 그 감나무, 아직 살아 있을까? 낫을 들고 쟁기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던 그 농민들의 한서린 감나무가 다시 보고싶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은 참 많았다. 그러면서도 답사의 방법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는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중심으로 보게 되었던 나의 답사기. 하지만 책에서 본 내용을 확인하는 답사와 장소 자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는 답사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 나의 가슴속 깊이 각인 되었다. 장소를 통해 시간의 의미를 재발견하라는 그 지침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해 본다. 조선시대의 성곽도시였던 한양의 모습을 옛 지도를 따라 걸어본다는 건 왠지 설레임을 줄 것만 같았다. 책속에서 안내해주는 코스를 따라 도는 것만해도 내게는 벅찬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한바탕 우리문화를 따라 돌면서 역사기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조선의 기록 어디에서도 청계천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청계천이란 말이 생겨나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하고, 공주가 살고 있는 곳이라해서 소공동이 되었다고하는 동네이름이나 지역명에 대한 유래들은 낯설면서도 낯설지않게 들렸다. 옛 지도를 따라 걸으며 성곽을 복원해가는 작가의 숨결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곳은 성곽길이었습니다,라는 안내글이나 표지판을 벽이나 보도블럭에 표시를 해 준다면 좋지 않을까하는 작가의 생각을 나도 해 본적이 있었다. 도로를 내기 위하여 끊어져버린 남한산성의 성곽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성곽모양의 육교라도 만들어 성곽을 연결해 놓았으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마음이 우리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스피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를 다루는 책들이 보통은 성안의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에 맞춰져 있는 까닭에 가끔 성 밖의 서민들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망설임없이 그 책을 선택했었다(요즘은 그런 책들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 책의 작가 역시도 성 안의 이야기만을 따라가지 않고 성 밖의 이야기를 따로이 들려주고 있다. 성 안은 지배이념이었고 성 밖은 성 안의 삶을 지원해 주었던 실물경제의 생활이었다고 말해주면서 주요 농업지대나 한강을 따라 뱃길이 머물던 나루터, 물류의 중심지는 어디였는지 그리 흔하지 않아 우리가 건너뛰기 좋은 지리적인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음이다. 여러가지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참 많았다.
조금만 더 일찍 이 책을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다. 잘못되었다면 다시 찾아가 제대로 느껴보면 되는 일일테니 말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옛 지도를 보면서 나도 다시한번 성곽의 도시 서울, 아니 한양을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아직은 찾아가 보지 못한 곳이 많다. 끊어진 성곽길의 군데군데만 찾아보았을 뿐이니 다시한번 가야할 곳에 대한 정리를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옛 지도를 펼쳐보며 따라가 보았던 서울성곽이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의 말처럼 내게도 시간의 흐름, 역사로 장소를 볼 것이 아니라 장소를 통해 시간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답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들고 작가가 펼쳐주는 옛 지도를 보면서 다시한번 도전해 보리라 한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