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100쇄 특별판, 양장)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이 말로 할 수 있는 표현법은 몇가지나 될까? 입속의 칼이라는 혀를 굴려야만 나오는 목소리를 통해 전해질 수 있는 眞心은 얼마나 되는가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망설이고 망설여야만 하는 우리의 목소리.. 그렇다면 사람이 글로 또는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많을까? 말로 하기에 껄끄러운 것들은 글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말보다는 글로 할 수 있는 표현법이 더 많아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로 하든 글로 쓰든 모두가 한가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일텐데 뭔지 모르게 다른 뉘앙스가 풍겨난다. 예를 들자면 전화로 들려주는 목소리나 간단한 문자보다는 연필로 꼭꼭 눌러쓴 편지가 더 좋다는 말처럼.. 왜 그럴까?

말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일테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으니 어떻게든 전달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그런 존재, 마음.. 그런데 그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망설이고 망설이게 된다. 노파심일 수도 있겠고 내 뜻과는 다르게 잘못 전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기 때문일게다. 마음, 도대체 그 마음이 무엇이길래!

말이라는 건 한번 소리로 표현되어져버리면 그뿐,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지만 글이라는 건 쓰고 또 쓰고 다시쓰고를 반복할 수가 있으니 몇번이라도 고칠 수가 있을테다. 그러니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죽했으면 연필로 사랑을 써야한다는 노래가 다 나왔을까?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하지만 이 표현은 영 개운치가 않다. 왠지 가식을 조장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처음의 그 마음을 자꾸만 변색되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그런데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장황한가? 바로 그 마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까닭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드디어 읽고나니 사람이 품고 있는 마음 하나를 전달한다는 것이 이리도 힘겨운 것이었구나 싶은 생각에서다. 연어,라는 말속에는강물 냄새가 난다...는 한 문장으로 처음과 마지막을,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책. 안도현님의 <연어>였다. 글이 있고 그림이 있는 아주 얇은 책. 글이 있어 마음이 보여지는 어른을 위한 동화책. 이런 책을 읽으면 마음 한쪽이 지우개로 지워져버린 듯한 느낌이 찾아온다. 이런 책을 읽으면 잠시 멈춰선 채 가슴속에 바람을 하나가득 품어안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런류의 책이 좋다.

그런데 처음부터 작가의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낚시전문잡지에 기고했던 짧은 글 한편으로 독자들의 항의전화를 몇 통 받아야 했다던 작가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기 자신만의 잣대로 작가의 글을 재어본 사람들의 말일터이지만 그랬기에 그는 다시한번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연어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싶어 이것저것을 찾아 헤맸다던 작가는 물속에 추락해버린 비행기 그림으로 연어떼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연어떼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두 마리의 연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등이, 다른 연어처럼 푸른 바닷빛을 닮지 않은 채 온통 은빛인 '은빛연어'의 이상과 꿈. 그 은빛연어의 삶을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어느 순간 불곰의 커다란 손아귀에서 은빛연어를 구해주었던 '눈맑은연어'는 이렇게 말했었다. 마음의 눈을 뜨라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내가 오래도록 정말 유난스럽게 좋아하는 만화영화가 하나 있다. <오세암>이다. 몇번을 보아도 볼 때마다 눈물바람이고 그 어린 주인공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켠에 찬바람이 일곤 한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힘겹게 싸우는 어린 길손이에게 스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마음으로 바람을 볼 수 있다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거라고...

현실속에 안주하기보다는 세상의 더 먼 곳을 바라보기 원했고 가질 수 없는 무지개와 같은 꿈을 꾸었던 은빛연어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진정한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해주던 눈맑은연어의 사랑은, 간절한 만남이었으나 어느 지점에선가 서로 비켜가야만 하는 교차선 같다. 하지만 은빛연어도 끝내 이렇게 말해주었지. 삶의 특별한 의미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희망이란 것도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세상 어디엔가는 희망이 있을거라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아주 평범한 삶의 이치를 두마리의 연어를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였지만, 우리가 흔히 꿈꾸는 그런 사랑과 꿈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중요한 것은 은빛연어의 방황을 지켜보았던 눈맑은연어의 마음일거라고 작가는 은근히 부추키고 있는 것 같다. 눈곱만한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그 마음의 방황이 훨씬 더 아름다운 거라고. 왜 자꾸만 세상의 다른 곳을 보려하는지, 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병든 강물의 통증을 알아채는 연어가 있었고( 하지만 강물은 그 아픔에 대해 떠들어대거나 누군가를 탓하지 않았다), 그 강물속에서 사는 연어의 등이 이유없이 굽어버리는 현실속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있었다. 카메라를 든 인간과 낚싯대를 든 인간중에서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단 두 종류의 인간으로 분류해버리는 연어의 시선속에는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 들어있음이다. 당신은 어느쪽인가?  연어가 연어만의 길을 가야하듯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는 바로 나였고 너였을테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었을테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슴 한켠이 시리다.  들어오는 바람의 느낌때문에 싸아하게 아프다. <오세암>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어린 길손이와 바람처럼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이름도 내 기억의 저편에 깊이 묻혀질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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