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저 너머에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은 무엇일까? 밤이 오기전부터 기다리고 있는 어둠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처음 《ZOO》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치밀하게 그려진 내면의 어둠이 책장을 덮고 나서도 몇분간 내 곁에 있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었다. 나는 아마도 작가의 이름보다는 《ZOO》라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면서 《베일》의 책장을 열었을게다. 다시 그 오싹했던 밑바닥의 공포를 느낄 수 있을까?  단지 두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을 뿐인데도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작품이다. 어쩌면 어둠은 인간의 내면속에 존재하는 또하나의 어둠을 자궁삼아 잉태되는 모양이다. 야기와 교코의 시선을 서로 비켜가며 들려주는 첫번째 이야기 <천제요호>는 서글프게도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한 소년이 결국 악마에게 몸을 팔아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나의 아기가 되어줘, 너의 몸을 나에게 줘, 그러면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께.. 보통은 영혼을 팔아버리는 거래가 오고가는데 이 소년에게 악마가 요구한 것은 소년의 몸이었다. 영혼은 육체를 필요로하는 까닭이었을까?

장난같은 게임속에서 마법의 힘은 발휘된다. 코쿠리상.. 초혼술의 일종으로 영혼을 불러 질문하고 대답을 얻는 놀이라고 해석되어져 있다. 아마도 우리의 아이들도 심심찮게 한다는 '분신사바'같은 종류의 게임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루함과 따분함을 이겨내지 못해 코쿠리상을 하게 되는 소년.. 누구 있어요? 라고 묻는 소년앞에 사나에라는 영혼의 대답이 보여지고 소년의 삶속에 예견이라는 형식을 빌려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한다. 친구의 죽음을 말했던 사나에의 예견대로 친구는 죽고 앞으로 사년 뒤 괴로워하며 죽을거라던 자신의 죽음예견에 소년은 그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그 때 사나에가 말했지. 몸을 나에게 넘겨. 인간의 몸이야. 대신 더 튼튼한 몸을 줄게. 나이도 먹지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거래는 끝났다. 그리고 소년 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늘 그렇듯이 악마와 대적해야 하는 사람은 마음이 곱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야말로 악마와 대적하기엔 최적의 대상이다. 그러니 야기를 만나는 교코 역시 그렇다. 어둠의 분위기, 다가가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정체모를 불길함, 전쟁터를 헤쳐나온 것처럼 지저분한, 거기에 온몸을 붕대로 감싸고 있는.. 하지만 교코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자신의 손이 남자의 어깨에 올려졌을 때 공포와 두려움, 슬픔따위의 복잡한 표정을 보여주었던 남자와 한공간에서 머물게 된 교코가 이상하리만치 그 남자 야기에게 끌렸던 것은 어쩌면 교코의 내면 깊숙이에 감춰두었던 어린시절의 어두운 면 때문이었을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어둠에 대하여 야기에게 이야기하며 편안함을 느꼈던 교코의 마음을 통해 우리 모두가 숨기려고만 하는 내면의 어둠을 보게 된다.

야기가 교코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을 따라가다보면 야기가 악마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절절하다. 한순간의 실수로 그 따스했던 가족과 멀어져야 했고, 짧았던 순간의 선택으로 인하여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둠의 저편으로 몰아내버린 야기의 고통.. 서서히 동물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면서 팔지않은 영혼마져도 육체에 잠식당해가는 그 과정이 왠지 서글프게 다가왔다. 스스로가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교코를 통해 알게되는 처절하고도 끔찍스러운 야기의 서러움을 어찌할까..

두번째 이야기 'A MASKED BALL- 그리고 화장실의‘담배' 씨 나타났다 사라지다' 에서 보여주는 어둠의 동기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낙서'다. 낙서하지 마시오. 그렇게 쓴 당신의 말이 낙서입니다. 장난처럼 시작되어지는 화장실의 낙서가 엄청난 비극을 불러오지만 그 비극을 불러들이는 주인공 역시 어둠 저편의 존재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한편의 학교괴담 시리즈같다고나 할까?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법한 사소한 비밀따위가 남들앞에 드러날 때는 또하나의 약점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결코 가벼운 이야기처럼 보여지지는 않는다. 이중의 얼굴, 가면을 쓴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의 테두리.. 그것이 우리에게는 알지못하는 사이에 하나의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우선인 이 사회의 아이러니일까?

악마와 거래를 해야하는 순간은 누구나에게 찾아온다. 그것도 자신의 욕심, 과한 감정상태일 때 찾아오는 것이 악마일게다. 그러니 참 어렵다. 내 자신을 다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경우가 더 많은 까닭이다. 베일 저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라보아서는 안 될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만들어진 내 모습에 더 익숙해져서 내 안의 참모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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