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돌의 도시 - 생각이 금지된 구역
마누엘 F. 라모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시리즈하면 뭐니뭐니해도 주제 사라마구를 떠올리게 한다.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눈 뜬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짜릿함을 떠올렸을 게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느낌속에 다시한번 젖어들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아주 대단한(?) 착각이었음을 몇 초안에 알게 되었을 때의 허망함이라니... 이래서 선입견은 참 무섭다. '생각이 금지된 구역'이라는 부제처럼 어쩌면 나도 생각없이 이 책을 읽었어야 했던 것일까? 도무지 앞뒤 가리지 않고 밀려드는 어색함과 난감함때문에 당혹스러웠다. 뭐지? 책장을 넘기면서 이제는, 이제는하고 바랬던 것들이 어이없음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을 때 나는 다시 되뇌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나의 독설과 께름직한 생각은 단지 문화적인 차이때문이었을거라고.

스페인을 발칵 뒤집은.. 멍 때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발칙한 경고.. 왜 이런 소개글이 필요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때는 49세기다. 전 우주가 하나로 통합되었고 모든 것, 하다못해 인간의 감정까지도 머리쓸 일이 없게 된 세상이라는 말이다. 사랑까지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게 21세기라고 하니 멀고도 먼 미래의 이야기쯤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말까? 하니 그러기엔 너무 진부하다. 이미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현실이 그 멀고도 먼 미래, 49세기를 다루고 있는 책속에 버젓이 머물고 있는 까닭이다. 뭔가 색다른 느낌조차도 전해받지 못하고 엉뚱하지만 기발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조차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새롭게 끼어드는 감정이라는 물결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마치 떨쳐내야할 그 어떤것과 마주한 것처럼.. 이쯤에서 나는 아하! 그런거였나? 싶은 생각하나 하게 된다. 디지털, 멀티시스템, 스피드에 뒤엉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당신들이 잃어버린 것, 잊고 살아가는 것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는 경고성 플랭카드를 하나쯤 걸어둔 것 같다고...

억지로 꿰어 맞춘듯이 정신 사납게 헷갈리는 무슨 무슨 부처의 이름이나 장관 이름따위는 싹 잊어버리자. 단 우리의 주인공이 공무원이라는 것과 어떤 알 수 없는 사건속에 휘말려 희생양으로 처리된다는 것만은 잊어버리지 말자. 우리의 주인공 카르멜로는 내리막길만 보면 생겨나는 질주본능을 어쩌지 못하는 일종의 정신분열증환자다 (질주본능에 이끌려 다니는 현재의 우리에 비유된 모습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무언가에 부딪히기 전에는 어지간해서 멈추지 않는 그가, 어느날 우연히 대통령의 소매치기를 붙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지만 무슨 사연인지 쫓기는 신세가 되고 새로운 의술의 실험양까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끝났으면 좋았을 그런 스토리라인이 엄청 부담스러웠던 순간이다. 졸지에 스타맨과 수퍼맨이 되어버리는 남자의 이야기. 한마디로 황당했다.

필립 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라는 작품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왜 그 작품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먼 미래의 세상을 다루고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차라리 그 작품속에서는 어느정도의 공감성도 확보되어 어색하지는 않았었던 기억이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빗댄 듯 보여지는 관리들의 잇속 챙기기 라거나 부패성 따위를 논하자고 했다면 굳이 그 멀고먼 미래 49세기를 거론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토록 먼 미래를 보여주었던 것이 어쩌면 반어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비뚤어진 현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는 오히려 먼 미래에서조차 전혀 변하지 않을 거대조직의 그림자속에서 그저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인양 그려낸 것이 왠지 서글프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끝은 어떨까? 블랙유머라고는 했지만 정말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에필로그'가 있었고 '에필로그 후편'이 있었고 그 마지막에 'Fin (에필로그 후편)'이 또하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둥근 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Fin (이제는 정말 끝이다)... 그래 나도 끝이다. 이 책의 끝..  옮긴이의 말이나 역자후기 하나쯤 곁들여 있었다면 좀 괜찮았으려나?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