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 외면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진실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만약에 진실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 우리에게 진실이라는 것이 인정받을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정말 아무런 사심없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줄수는 있는 것일까? 이 책속에서 저자는 말한다. 진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단점은 게으름이라고. 진실은 너무 교만해서 도무지 자신이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그리하여 진실은 진실아닌 것들이 진실이 되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할 때 그저 누워서 입에 감떨어지기만 바라고 있다고. 그리하여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상처와 실망을 안겨줄 뿐이라고... 단연코 나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동의한다. 진실은 그저 존재할 뿐이고 인식될 뿐이고 흔적을 남기기에도 너무나 미미한 존재일뿐이라고..

처음부터 단호하게 나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다. 책속의 주인공 강인호와 서유진이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을 위하여 법정에 섰을 때 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힘도 없는 것들이 까불고 있어? 돈도 없는 것들이 까불고 있어? 조용히 해 이것들아!... 벌써 여러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잊지 못하는 남편의 목소리속에도 그 일갈은 남아 있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심적으로는 당신이 옳다고 인정하지만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노라고 말했다던 법률심사원의 말을 들려주면서 무너져내리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내게는 생생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官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 내가 그저 힘없고 돈없는 현실만 탓할 수 밖에 없었듯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하여, 그 여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너희도 하나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법정싸움도 불사했던 강인호와 서유진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장애우라는 말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얼만큼이나 껴안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말을 못할 뿐인데, 남들보다 조금 생각하는 힘이 모자랄 뿐인데, 단지 그들보다 조금 더 많이 생각할 줄 알고, 그들보다 조금 덜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불편을 이용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천벌받아 마땅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전에 읽었던 정유정의 소설이 떠올랐다. <내 심장을 쏴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두사람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되어졌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갇혀진 공간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탓일게다. 그곳을 떠난다해도 마땅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던 자애학원의 말 못하는 아이들과 세상에게 등떠밀려 들어왔던 정신병원의 두 남자에게 다가왔던  외면이라는 서글픈 진실..  그 공간속에서 정해진 규율은 그들을 옭아매는 올무같았을 것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목을 조여오는 올무같았을 것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저자처럼 실제적인 체험이 아니기를 바랬다. 그랬던 나의 간절함이 끝내 무너져내리던 순간 작가의 말은 내게 하나의 비수처럼 꽂히고 말았다. 단 한 줄의 신문기사때문이었다고.. 그 순간부터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고..  교장에게 행정실장에게 생활지도교사에게 많은 시간동안 성폭행을 당해왔던 아이들이 처음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작은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사람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닐것이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삶의 무게가 그들을 진실앞에서 외면하라고 유혹했을 것이다. 비참한 현실의 짧은 안위를 위하여 어린아이들의 절규를 합의금이라는 악마에게 팔아버려야 했던 아이들의 부모조차도 우리는 탓할 수 없는 것이다. 책속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무진시는 하나의 거대괴물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거대하지는 않았을게다. 자석처럼 달라붙어버리는 힘과 권력과 돈의 흐름이 그 괴물을 점점 부풀어오르게 했을 것이다. 그 괴물의 몸뚱이에 붙어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그들조차 탓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 또한 서럽고도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온갖 비리와 부조리가 보란듯이 우뚝 서버린 세상.. 결국 예수가 다시 온대도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겠구나 싶기도 하구요. 저런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또다시 예수를 죽이겠죠... 모든것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서유진은 그렇게라도 생각하고 싶었을 게다. 정말로 절대자의 힘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되어지는 때마다 혼자였다고 느꼈기에 그들은 '홀더'라는 이름을 앞세운채 살아남았을 것이다. '홀로 더불어'.. 홀로 서고 더불어 산다.. 비록 법정싸움에서는 패했지만  세상속에서 내밀어준 식지않은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그러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고 위안 삼았을 게다. 저자는 말한다. 성폭행의 피해앞에서 동생을 잃어야했던 어린 민수의 입을 통하여.. 우리도 똑같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힘있고 돈있는 저편에서 본다면야 당연히 진 것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이긴 것인지도 모른다고 서글픈 독백을 한다.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세상이라고.. 그야말로 비리와 부조리의 도가니, 광란의 도가니가 아닐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강인호가 아이들의 불행을 모른 척하지 못하고 정의라는 이름을 내세웠을 때부터..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녹화를 하고, 그 진실을 밝혀내기 위하여 텔레비젼 방송이 나가고, 그들이 법정싸움을 시작했을 때,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거라고, 길고 지루한 싸움속에서 철저하게 짓밝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또하나 만들게 될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서글프게도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일테니 말이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니 우리가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던 장애우들의 외침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하나둘씩 불러주던 그 이름들이 보여질 때 정말 많이 아팠겠다고 먹먹해지던 가슴속의 느낌.. 그들의 소리없는 외침이 울림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에 메아리쳐주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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