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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밍쯔 - 산양은 천당풀을 먹지 않는다
차오원쉬엔 지음, 김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사람은 수영을 하지 못한다. 죽겠다고 했던 사람도 위기의 순간에서는 살려달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수영은 못하지만 그사람 살기 위해 몸부림칠 것이다. 무엇이든 곁에 있는 것은 잡아볼 것이고 누구든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겠다. 하늘의 도움으로 어딘가에서 썩은 나무조각이라도 흘러내려온다면 그건 좋은 일일까? <17세 밍쯔>를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고 있던 내 머리속의 영상이다. 그만큼 밍쯔의 삶은 절실했다. 누군가에게 손내밀수도 없었던, 아니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기에 혼자 아파해야 했고 혼자 성장해야만 했다. 세상은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일들은 도대체 어떤 규칙속에서 움직이는 걸까? 어떤 빌어먹을 존재가 나를 희롱하는거지? 도대체 왜 나만 이렇게 갖고 노는거야? 더이상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에게 다가왔던 복권의 유혹은 너무도 강렬했다. 차가운 현실이었다. 있는 돈 모두 털어 복권을 사는 밍쯔의 마음은 차라리 현실에 대한 절규였다. 어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보고싶지 않았을게다. 그 지독한 자신의 현실을.. 차마 개봉하지도 못한 채 주변사람에게 되팔아버린 그 몇 장의 복권속에서 조롱하듯이 남의 손안에서 1등에 당첨되는 한장의 복권을 보는 순간 그 절망은 형언할 수조차 없었을게다. 하늘은 왜 이다지도 불공평한가! 도대체 왜 나만 안되는거지? 왜? 누구나 한번쯤은 하늘을 향한, 누군가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를 자신의 귀에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아프도록 때려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밍쯔는 울지 않았다. 눈물조차도 거부해버린 밍쯔의 서글픔을 누가 알아줄까?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은 그야말로 거대 공룡처럼 밍쯔를 몰아부쳤다. 밍쯔의 절망은 분노로 변하고 그 분노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하게 된다. 더러운 도랑물을 건네 달라고 도움의 손을 내밀었던 소녀에게 밍쯔는 보란 듯이 내밀었던 손을 슬쩍 다시 거두어 들이고 소녀는 도랑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밍쯔에게 흙탕물을 튀겼다는 것도 알지 못한채 밥을 먹고 나온 트럭 운전수는 밍쯔가 사과상자를 묶었던 끈을 풀어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출발했던 트럭의 짐칸에서 하나 둘 떨어지는 사과상자와 거리를 가득 메우는 빨간 사과의 물결은 마치도 상처받은 밍쯔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떨어져 굴러다니던 사과 몇 알이 배고픈 자들의 주머니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뱃속을 채워주던 순간은 정말이지 너무도 서글픈 장면이 아닐수가 없다.
이 소설속에는 것은 어린 소년 밍쯔가 자라는 모습과 함께 변해가는 중국의 모습도 담겨져 있다. 아울러 자연과 멀어지는 인간의 모습도 함께.. 어떤 사회든 변화는 찾아온다. 숱한 시행착오와 절망을 함께 동반한채로.. 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변화라는 물결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밍쯔가 살았던 고향 샤오더우의 절망은 작은 희망을 데리고 찾아왔지만 이내 다시 절망으로 부서져버린다. 그야말로 '종이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 변화의 물결이 하얗고 고귀한 모습을 한 양의 모습으로 그들을 찾아왔지만 환영과도 같은 존재로써 다가왔을 뿐이었다. 서로 돕지 않고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변화를 자연은 용납하지 않았다. 누구나 원했던 희망이었기에 샤오더우의 많은 풀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굶어죽는 양들의 모습,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던 양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이라는 단어의 낯설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정말 비참하기까지 하다.
그 끝없을 것 같은 절망속에서도, 진흙탕같은 현실속에서도 희망을 싹틔우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는 쯔웨이라는 소녀에게 지팡이를 만들어주는 밍쯔의 마음을 통해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휠체어를 탔던 소녀는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의 밍쯔가 건네주었던 그 지팡이로 인하여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아주 잠시동안만.. 아프게 성장하는 밍쯔의 모습과 일치되는 상황이다. 포기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희망을 가질수도 없는 모진 현실.. 소녀가 잠시라도 걸을 수 있게되는 과정속에서 밍쯔 역시 서서히 어른으로 변해간다. 마침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고도 걸을 수 있게 된 소녀와 이제 어른으로써의 자리매김을 해가는 밍쯔..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그다지 좋은 곳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곳도 아니야..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지나치게 성실해서도, 양심을 내팽개쳐서도 안 되는거야... 모순이다. 하지만 또한 진리다. 지나치게 착하거나 성실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남을 마구 짓밟아서도 안되는 게 세상이치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아채야만 하는 것일까? 목공일을 배우기 위해 자신에게 왔던 밍쯔와 헤이관에게 목수스승 싼스님은 나의 잘못이라고 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분별력을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다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손기술만을 가르쳤을 뿐이라고.. 그러니 그 다음은 이제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게 된다.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실을.. 우리가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음이다. 그들이 이 험하고 거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올바른 가르침을 줄 수는 있는 것일까? 진실로 가슴아픈 대목이 아닐수가 없다.
시작은 정말이지 답답했다. 흐름이 너무 더디기만 했다. 아픔과 절망부터 시작했던 <17세 밍쯔>의 이야기는 중간부분부터 자신의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처 달려나가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목소리로 메아리를 만든다. 목공일을 하는 싼스님과 헤이관과 밍쯔는 하나의 현실이었고, 밍쯔에게서 지팡이를 받았던 쯔웨이는 절뚝거리는 희망이었으며, 쯔웨이 곁에 잠시 머물렀던 깔끔하고 부유해보였던 소년 쉬다는 우리가 품어야 할 꿈과 이상이었다. 현실은 서로 부딪히며 얼굴 붉히기도 하고 큰소리로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절름발이 같은 희망이라할지라도 그것을 곁에 두려고 하는 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잔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서글픈 이야기였기도 했다. 이제 어른이 되어 세상을 향해 도약하는 밍쯔의 앞날에 밝은 빛이 비춰주기를.. 그에게 올바른 희망의 싹이 움터나기를..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