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부터 스포일러를 자처해야겠다. 무슨 말이냐하면 추리소설이나 영화속의 범인은 항상 곁에 머문다는 것이다. 늘 그랬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범인을 쫓아가는 형사의 주변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가까이 머무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보면 대충은 맞아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죽은자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범인은 후자일까 전자일까?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긴장감이 생겨난다. 누가 범인일까? 같은 호흡을 하며 범인을 쫓다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도 그렇지만 소설도 어느정도는 그 형식을 충실하게 따가가고 있는 면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범인을 알아맞추는 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설령 범인에게서 살짝 멀어졌다해도 소설의 중간쯤에 이르러서는 어느정도 범인의 윤곽을 그려내게 된다. 이 소설 역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알아챘는데도 재미있느냐고? 물론이다. 사건은 사건대로, 해결해야하는 과정은 과정대로 그것을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다면 구성이 너무 허술한 탓일게다.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온다. 어느순간 무릎을 딱,치게 된다. 그만큼 흥미롭다는 말도 될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났을 때 범인이 밟아가던 그 기막힌 범죄의 구성이 참으로 놀라웠었다. 그리고 그 밑에 깔려 있던 잔잔한 애정공세라니... 그 느낌을 다시 <잠자는 숲>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잠자는 숲>이라는 제목과 책표지의 그림 토슈즈를 보면서 나는 두가지를 떠올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와 언젠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달구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다. 엉망이 되어버린 그녀의 발모양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말 놀라워 했던 그 때를... 이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발레리나들의 삶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의 열의와 준비된 노력이 없이는 프리마발레리나가 태어날 수 없다는 것.. 누구나 꿈꾸는 것을 누구나 가질수는 없다는 것.. 그랬기에 그것을 지켜내기 위하여 더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것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묘하게도 잘 맞아떨어진다. 초대받지 못한 마녀의 주술에 걸려 물레에 찔려죽을 운명이었으나 백년동안의 잠을 자는 것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되는 오로라 공주. 그녀가 잠들자 그녀 주위의 모든 것들도 잠이 들었었다. 모티브가 된 동화속 이야기와 이 소설의 발레단이 이끌어가는 묘한 심리전이 신기하게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이야기 설정자체에서도 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도쿄의 유명 발레단..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아무런 증거도 찾아낼 수 없었던 첫번째 살인의 증거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가가형사의 마음속으로 조용하게 다가오던 미모의 발레리나 미오.. 실질적인 주인공도 아니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설명을 주도하는 듯한 미오의 존재가 조금은 의아했었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가 있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뒤쪽 역자후기를 읽으면서 가가형사에 대한 프로필을 조금은 얻을 수 있었고 가가형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듯 하다.) 그 시리즈에 대한 궁금증을 일단은 모른척하기로 하고 형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따스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를 용의자로써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써 대하는 그의 여림이 왠지 마음에 와닿았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책속에서 살인을 불러들일만큼  발레리나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순애보보다는 미오를 향한 가가의 마음이 더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내게 전해져 온다.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듯이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주는 진실한 사랑에 대한 정의는 여러번을 생각해보아도 참 아름답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가는 순간적인 사랑보다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림으로 전해져오는 진실된 사랑을 보여주고 있음이다. 어쩌면 폐쇄적인 공간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발레단원들은 서로의 모습속에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어떤 의미로든 테두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외로움이었을 게다. 그리고 욕심이었을 게다. 어떤 외로움이었든, 어떤 욕심이었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버텨내게 해주는 하나의 버팀목이었을 게다. "그냥 왠지 오늘은 나를 위해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는 걸 듣고 싶었어요. 나 혼자만을 위해"..라고 말하던 미오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추리소설을 읽고 난 뒤 안도감이 아니라 이렇게 뭉클하게 젖어드는 뒷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잔잔하면서도 촉촉하게 젖어드는 느낌을 전해주는 형사를 만난다는 것도 그리 흔치는 않을 듯하다. 추리소설치고는 상당히 여리고 감성적인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사고 후유증으로 소리를 잃어가던 발레리나와 그 친구의 마지막 춤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들의 프리마발레리나를 위해서, 또한 관객을 위한 최고의 발레공연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그들의 모습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다니..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멋진 발레로 그려지는 영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그려진다. 동화와 발레와 추리소설의 만남.. 멋지지 않은가! 거기에 양념처럼 맛을 내주는 범인과 형사의 사랑이라니! 이쯤에서 나는 가가형사의 뒤를 밟아보고 싶어진다. 역시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가가형사 시리즈'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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