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 값싼 위로, 위악의 독설은 가라!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 소통법... 그녀의 책을 마주보면서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지. 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알지 못하는 게 삶이라던가? 죽는 순간까지도 배워야 하는 게 삶이라던가? 그런데 확실한 것은 그 와중에서도 좀 더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게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싶다. 성격적으로 나는 어지간하면 남들과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편이다.  타인에 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도 싫고 나 또한 타인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말듣는 게 싫어 내 일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살자는 주의다. 애들말마따나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인으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니, 그랬기에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를 들이받는 사람들에게 함께 받아치기 시작했다. 그냥 괜히 나만 손해보는 것 같아서. 허허 웃으면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돌아서고 나면 왠지 마음 한켠이 아팠다. 그 사람이 나한테 왜 그랬을까? 그러다가는 결국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거라고 자책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같이 받아치기 시작하니 사람들은 내게 들이밀지 않았다. 그랬구나! 역시 내가 바보처럼 산거였구나!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은 정말 시원하다. 사람이라고 일컬어지지 못하는 종류중의 하나가 '아줌마'다. 열외인간.. '대한민국 아줌마'는 못할게 없고 무서울게 없다지만 나는 못하는 것도 많고 무서운 것도 많다. 아직은 그 '대단한 아줌마'의 대열에 합류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 아줌마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다. 그악스럽게 현실을 살아내는 그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게다. 우스운 얘기 하나 하자. 언젠가 시외버스를 타면서  돈통에 차비를 밀어넣고 여유있게 뒤쪽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차비 더 내세요!" 나는 뒤도 안돌아봤다. "아줌마, 차비 더 내시라고요!" ..."저요?" .. 묻고 생각하니 그 정류장에서 차를 탔던 건 나 혼자뿐이었다. 시외버스였던 까닭에 요금이 더 비쌌던거다. 돈을 더 내고 자리에 앉아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뻐근해져오기 시작했다. 그랬다! 내가 아줌마라는 걸 나는 왜 잊고 살아가는 것일까?  마음은 항상 이십대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나이에 대해 의식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일게다.

여전히 인생의 깊은 뜻을 깨닫기는커녕 일상의 희로애락에 꺼둘려 애면글면하는 사이, 어라, 나는 얼결에 사십 대에 접어들었다, 고 말하는 여자 김 별아.. 이 아줌마의 수다가 꽤나 괜찮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무지렁이처럼도 아닌 아주 평범한 엄마이고 아줌마인 그녀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끔씩은 그녀 스스로가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 말조차도 그리 배부른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아줌마라면, 적어도 아줌마의 오지랖이라면 그정도의 배부른 소리는 해도 괜찮다. 나라걱정은 애국자만 하는게 아닐테니 말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일어나는 일들, 이웃과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일들,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모두가 日常이다. 日常에 대한 短想쯤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이 책의 내용들은 그다지 튀지 않는다.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것도 없어보인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마음이 따스했다면 그녀와 내가 같은 아줌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말일수도 있겠다. 어떤 말을 해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조건들이 많았다는 말일수도 있겠다.

이 책을 쓴 별아아줌마의 말처럼 내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는 침묵하며, 내게 필요하다면 행여 손해라도 볼까 목소리를 드높이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뭐 그리 오래전 얘기도 아닌 것 같은데 돌아보니 나도 벌써 지천명을 바라본다)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사는 '주부'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고싶은 말 다하고, 하고 싶은거 왠만큼 하면서 살아가니 그 또한 격세지감이 아닐까 한다. 주부습진이나 명절증후군에 휘둘리지 않는 '주부'의 모습이 그래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여지는 까닭이겠지 한다. 누구나 다 똑같이 사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같다고 한다. 매일 시간에 쫓기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소리지른다. 그러면서도 내 안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무언가를 찾아헤맨다. 그런 것들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얼만큼 자기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좀 더 다른 평가가 나오는 세상인 듯 하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기도 할게다.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 닿기 위해 말을 하고 향기를 풍기고 자신을 보기 좋게 꾸민다. 그럼에도 때로는 말이 불필요하거나 말할 수 없고, 향기로 내뿜어 맡게 할 수 없고, 다 보여 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때 사람들은 가만히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머물렀을 것이다. 결국은 사람인데,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데,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얼만큼이나 소통할 수 있는가인데.. 싶었다. 그러자면 남들이 들이민다고 무조건 밀리기보다는 적당하게 받아쳐야하는 굳센(?) 마음과 기술(?)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을 쓴 별아아줌마 역시 그렇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내심 반갑다. 정당해야한다는 거다. 필요없이 혹은 이유없이 상대방의 잣대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거다. 하지만 별아아줌마의 충고도 잊으면 안될것 같다. 남들이 얕잡아보지 못하도록 냉정하고 사무적인 표정을 짓는 동안 마음은 황무지가 되어가고, 남들에게 행여 '우습게 보여서' 한 치라도 손해를 볼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누구의 입가에도 빙그레 미소를 떠올리게 만들 수 없는 삭막한 사람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웃음만큼 부드러운 무기가 없다는 말. 많이 웃을수록, 남을 많이 웃게 만들수록 부자라는 말. 정말 멋지지 않는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웃음이 없다면 정말로 이 세상은 못살 세상이다. 백프로 공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싸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그야말로 잘 싸우기 위해 머리를 싸맸을 별아아줌마의 이야기가 참 멋스럽다. 그래서 오늘도 모욕에 대한 매뉴얼을 만든다는 별아아줌마의 생각에 동참하기로 한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맞받아칠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한다. 별아아줌마의 지적처럼 잘못 싸워서 공연히 죄책감과 자괴감만 쌓이는 순간들이 너무 싫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별아아줌마 화이팅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넋두리를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별아아줌마의 마음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만든 세상이 아니 그런 세상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 또한 안스럽다. 그래도 세상은 내가 살아가야 할 순간인 것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생각해보니 적당하다는 게 참으로 어렵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