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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ㅣ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블레이드 러너>.. 내가 이 영화를 보았던가? 찾아보니 보긴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남아있는 느낌이 없지? 다시 생각해보니 약간의 느낌은 남아 있다. 마지막 장면이었던 것 같다. 건물의 옥상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남자를 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또 한사람의 눈동자. 그 눈동자속의 흔들림. 어느 순간 매달려있던 사람을 들어 올리고 떨어져내리던 장면.. 아하, 바로 그 영화였군! 그제사 생각이 난다. 평균수명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절망이었을 것이다. 기대했던 것에 대하여 더 이상의 희망을 갖지 못할 때 살아야 할 이유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사이보그였지만 결코 사이보그가 아니었던 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그들만의 의지가 있었고, 그들만의 희망이 있었으면 그에 따른 그들만의 깊은 절망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있었음에도 그들은 사이보그였다. 아니 사이보그일 수 밖에 없었다.
단지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의 원작이었기에 이 책을 선택했던 건 아니었다. SF적인 요소가 너무 짙게 깔린 내용들은 솔직히 황당하기도 하고 읽을때마다 당혹스러운 느낌을 전해주었던 까닭에 잘 선택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관심이 갔던 것은 영화가 미처 그려내지 못한 것들을 책을 통해 만나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 것일게다. 다행스럽게도 우려했던 것만큼 당혹스럽지도 않았고 황당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인공 릭 데커드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인간들속에 숨어사는 혹은 문제가 있는 기계인간 안드로이드를 처리해주는 댓가로 돈을 받는 사람. 그의 꿈은 진짜양을 사는 것이다. 어느날 아침 안드로이드에게 당해버린 그의 선배를 대신 해 여섯명의 안드로이드를 없애라는 임무를 부여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핵전쟁의 후유증속에서 감정조절기를 이용해야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세상은 온통 먼지와 쓰레기 투성이다. 인간들 사이에 숨어 들었던 안드로이들은 하나 둘씩 릭의 손에 제거되지만 그들이 하나씩 사라져갈 때마다 릭의 가슴속에는 작은 울림이 생겨난다. 그들이 과연 이렇게 죽어야 옳은가! 나는 과연 저들을 이렇게 죽여도 되는 것인가! 인간의 고뇌,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고뇌.. 아무런 차이점도 느껴지지 않는 고뇌의 함정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 오직 릭 하나뿐이었을까? 책을 읽다보니 문득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토탈리콜>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탈출에 성공한 그들에게 찾아왔던 맑은 공기와 자유.. 인간의 기억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야 흔한 소재일뿐이니 그리 새삼스럽진 않지만 (화성을 탈출한 안드로이들에게도 이식되어진 기억은 있었다) 이 책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감정이입기나 영화 <토탈리콜>에서 보여주었던 공기정화기가 안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크게 다가온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지금 이 지구촌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어쩌면 환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되먹지 못한 생각이 자꾸만 든다. 릭의 레이저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올때마다 먼지처럼 풀썩 내려앉는 안드로이드의 모습이 어쩌면 우리 인간의 미래는 아닐까 하는, 정말 SF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미 인간다움이 없어져버리고 생명체다운 생명체들이 없어져버린 상황, 진짜 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는 세상속에서 과연 누가 사이보그인가를 묻고 싶었고, 과연 누가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책... 이 책의 제목처럼 정말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꿀까? 인간이 진짜양을 키우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한장 한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 장면들이 기대가 되었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안드로이드와 하룻밤을 지내는 릭의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거릴 때 과연 그가 선택할 마지막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그의 감정선은 그냥 꾸물거리기만 했을 뿐 어떤 것도 만들어내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이니까,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할 인간이었기에 그럴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일까? 뒷심부족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잘 달려갔다고 생각했는데 결승선에는 끊어야 할 테이프가 없었다. 그의 방황을 통하여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찾아내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찌되었든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었던 SF소설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후손들은 정말 화성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