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지음, 최인자 외 옮김 / 해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주제 사라마구라는 이름하나만으로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임엔 분명하지만 조금의 내용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건 누구도 탓할일이 아니다. 수도원의 비리를 파헤치고자 했던 걸까? 딱히 그런 것만도 아닌 듯 하다. 종교적인 이념에 허를 찌르는 그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소개글처럼 감동적이고 매력적이고 진실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아마도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일게다. 비망록이란 단어의 뜻을 빌려서 이야기를 하자고 말한다면 우리의, 아니 책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들 모두의 일상 자체가 비망록에 속한다. 우리 모두가 잊으면 안되는, 잊어서는 안되는 사소한 것들의 비망록...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서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나에게 주었던 그 놀라움에 대해서는 두말 할 나위가 없겠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그토록이나 신랄하게 파헤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놀라웠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편안한 느낌으로 이어지던 문장들이 놀라웠었다. 그래서 나는 주저없이 선택했었다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눈을 뜨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잃어버린 채 겪어내야 했던 일상들과 그 잃어버린 눈을 되찾고 다시 눈 뜬 자들이 되어 살아내야 할 그들의 일상이 궁금했었던 까닭이다. 어쩌면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작의 느낌을 이 책속에서도 만날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었던 것은 온전한 나의 욕심이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작자와 나의 힘겨루기는 시작되어진 것일게다. 이제까지 접해보았던 그의 책과는 왠지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는 당혹스러움 앞에서 나의 발걸음이 자꾸만 서성거려야 했기에..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마녀재판의 현장속에서  외팔이 발타자르와 남과 다른 능력을 가진 마녀의 딸 블리문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주앙 5세와 마리아 아나 왕비에게 아이를 갖게 해 주겠노라고 신처럼 약속을 내려주던 수도사의 그 오만함은 또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마침내 아이는 태어나고 그렇게하여 '마프라'라는 소도시에 수도원 건립을 위한 일들이 착수된다. 그 고된 노역의 현장 하나 하나가 비망록으로 남겨진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인원보충을 위하여 아니 완공날짜를 앞당기기 위하여 징집되어지는 남자들의 가정은 깨어지고 그들의 행복은 거기서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일 할 수 있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야 했고 그들의 손목에는 죄인처럼 오라를 지워야만 했다. 누굴 위해서였을까? 새로 태어난, 그야말로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공주를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그 피상적인 존재를 앞세운 종교적인 이념과 권력 남용의 허세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 완성을 앞둔 수도원으로 옮겨진 수도사들의 조각상을 보면서 블리문다는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나는 그들이 좌대에서 내려와 우리처럼 인간이라면 좋겠어요. 조각상하고 대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발타자르가 대답했었다. 어쩌면 그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지(576쪽)... 참 허탈하다. 누가 누구를 구원하는가!

날으는 기구 파사롤라를 떠오르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의지를 모으기 시작하는 블리문다. 배고픈 상태에서만 모든 것들의 영혼을 볼 수 있다는 블리문다를 위하여 날마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던 발타자르. 기이한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전설처럼 퍼져나갈 때 드디어 파사롤라는 떠올려진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성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 성령은 곧 사라져버리고 인간의 나약한 가슴속에서 작은 파동으로 기억되어진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파사롤라가 다시 떠올려졌을 때 블리문다와 발타자르에게 이별이 찾아왔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주 오랜 시간을 이 책과 싸워야 했다. 진실하고 매력적이라던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그 신비로운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까닭이었을까? 지루했고 답답했고 꽉 막힌 동굴속에 갇혀버린 듯한 그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토록이나 나를 힘겹게 했던 것일까? 되짚어보면 우리가 살아내야 할 모든 것들이 비망록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나도 피상적인 존재,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지 않는 그런 존재에 스스로 얽매인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올무를 그가 끊어주고 싶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징집되어져 어쩌면 죽을수도 있었던 그 처절한 노동의 현장속에서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땀과 피를 흘려야 했는가를 다시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파사롤라라는 기계를 통하여 인간의 의지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에서 묻고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도 묻고 싶다. 정말 인간의 의지는 하늘에 맞닿을 수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가 역사를 이루는 작은 조각이라는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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