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안고있는 의미는 참 큰 듯하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견책소설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다.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씌여진 소설.. 풍자적인 요소가 다분하다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종류의 소설이 있었을까? 나는 내심 궁금해졌다. 언뜻 생각나기로 홍길동전이나 양반전과 같은 글들이 떠오르기는 한다. 굳이 따지자면 있기야 하겠지만 견책소설이란 말을 쓴 것이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 루쉰이라고하니 우리 문학속의 견책소설에 대한 궁금증일랑은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이 소설은 라오찬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주유하며 써내려간 글들이다. 그의 직업은 의사지만 의사라기 보다는 암행어사에 가까워보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두사람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어사 박문수와 김삿갓이다. 암행어사의 신분으로 각지를 떠돌며 옳고 그름에 대하여, 혹은 관리들의 폭정이나 백성들의 억울함을 들어주었다던 이야기가 그랬고, 지혜로움을 내세워 사회적인 모순들을 하나씩 드러내어 풍자하던 <김삿갓의 지혜>라는 책이 떠올랐던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정부패를 행한 관리를 응징하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한다. 자신의 청렴함을 앞세워 상황에 맞게 사리를 따져보지도 않고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루었던 관리들의 학정을 폭로하고 비판하였다는 데 의의를 둔다고 하니 그것도 참 색다르다. 거기에서 또 한가지 라오찬이란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신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 상황에 맞는 의견을 나누면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나름대로는 포청천이라는 사람을 떠올렸었는데 그것과는 좀 거리가 먼듯하여 머쓱해지기도 했다. 어디 중국뿐이랴,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 어느나라를 가더라도 백성들을 말로만 사랑하고 위했던 관리들은 부지기수일것이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약간의 혼동이 오기도 했다. 황하를 의인화하였다거나 그 당시의 주변국들,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흔들리던 중국의 상황을 비유했다는 대목들은 이 책에 대한 약간의 지식조차없이 책읽기에 들어간 나를 당황스럽게까지 만들었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황하에 뱃길을 뚫기 위해 밤새도록 혹한속에서 오로지 관리들의 통행을 위하여 얼음을 깨던 백성들의 고통과 출세욕을 내세워 앞뒤가 다르게 모순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인 병폐, 나만 깨끗하다고 생각하며 백성들을 고통의 고리로 엮어버리는 관리들의 이야기를 하나 하나씩 고발하고 있다. 몸을 파는 기녀들의 입을 통해  지식인들의 가식과 허위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부리는 공자 이야기 등 모두 그 시대의 모습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 

그런데 소설속에 등장하는 관리들이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주 신랄한 비판이 아닐 수가 없겠다. 책의 말미에 있는 작품해설에서 빌려온 글을 옮겨보자면 이 책이 어떠한 형식의 책인가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 소설은 저자 류어가 자신의 행적을 소설화한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라오찬이라는 떠돌이 의사가 각지를 편력하면서 보고 들은 사건들을 기록한 형식으로 당시 청나라의 정치와 사회상을 폭로, 비판한 소설이다. 라오찬(老殘)이란 늙고 힘없는 사람이란 뜻이고, 유기(遊記)란 여행자의 기록이니, 이 책은 늙어 힘없는 관찰자가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견문한 사실을 적은 여행의 기록이 된다. -

이 책속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당시의 시대상도 그렇고 작가 류어가 믿었다는 태주학파의 교리를 말해주는 대목등이 그렇다. 태주학파는 일명 대성교, 성인교, 황애교라고도 불리는 종교로 유, 불, 도의 세 종교를 혼합한 지방 종교라니 참 대단하다 싶다. 다시한번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 책을 읽던 도중에 책장을 덮었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잡았을 때는 뒷쪽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읽기 시작했다. 작품해설을 통해 이 책이 어떤 책인가를 먼저 알았고, 옮긴이의 말을 통해 류어라는 작가에 대하여 먼저 알았다. 그리고 우습게도 책의 말미에 있었던 아주 작은 글씨로 해석해놓았던 를 먼저 읽었다. 그렇게하고 나니 어느정도는 책읽기가 수월했던 것 같다. 한 시대를 알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만은 아닌듯하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