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는 풍경이 얼마나 있을까? 사느라고 바빠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볼 여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생겨나는 배경들이 삭막하게 솟아오른 콘크리트 빌딩이 아니라 나무와 나무들이 서로 뽐내듯이 얽혀든 그림으로 하늘을 받쳐줄 수 있다면, 그런 풍경들이 늘 우리곁에 머물러 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원한 느낌, 그 정겨운 느낌을 이 책이 담고 있음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제목에서부터 풍겨나오고 있음이다. 똥친 막대기... 지금 세상에야 치울 수 있는 똥이라는 게 개똥이나 비둘기똥 따위의 것들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는 정말 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그 똥이라는 게 자주 마주치는 그런 것들의 하나였다.  동네어귀를 들어서면 어김없이 맞아주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 그리고 그 아래에는 또한 어김없이 동네어르신들께서 모여 장기 한 판 두시는 정자가 있었거나 마루가 있었다.

옛날에 아니 그리 옛날도 아니겠지만 나 어렸을 적에는 고무신이 참 많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동네 도랑으로 나가 고무신을 거꾸로 뒤집어 배를 만들어 오빠와 동생이랑 재미있는 뱃놀이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그만 떠내려가는 고무신배를 잡지 못한 채 덜렁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엄마한테 혼나야 한다는 것보다도 잃어버린 신발이 아까워 눈물을 찔찔 흘렸던 기억도 있다. 들로 산으로 온통 천지가 다 놀이터였고 놀잇감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이 책속에 등장하는 소녀 재희를 보면서 느닷없는 추억에 사로잡혀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단발머리를 나폴거리며 논둑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참 귀엽기도 하고....

이 책의 주인공인 '나'는 처음부터 똥친 막대기가 아니었다.  백양나무의 가지로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많은 햇살과 바람과 엄마나무가 주는 양분을 받아먹고 살아가던 파릇파릇한 나뭇가지였었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꺾여지고 말았으니...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놀라 하릴없이 제 일터를 떠나버린 소의 궁둥짝을 때려주기 위해 그 아름답던 사월 봄날의 어느날 농부의 손에 들려지는 된 나는 의인화되어버린 나뭇가지다. 작가는 이 나뭇가지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쁜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채 아니 잊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한없이 불러 모으고 있다. 제 자신이 왜 꺾였는지를 잘 알면서도 그 일만큼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나뭇가지 '나'의 마음을 통해서 나는 영락없이 나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지지 않은 채 농부의 손에 들려 집으로 가게 되는 나뭇가지..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나'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일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점심을 가져왔던 그 소녀, 재희를 다시 보고 싶다는.. 그녀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나'의 염원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해서 다시 소녀를 보게 되지만 그녀의 종아리를 때려야 하는 회초리가 되었다가 그 집의 뒷간앞에 세워져 추운 밤을 떨며 지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제발 똥만큼은 살에 닿지 않게 해달라고 다시 기도하지만 무심하게도 그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똥통속에 첨벙!... 이제는 죽었구나 생각하는 나뭇가지의 그 한숨소리가 내게도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네 삶속에는 늘 힘겨움과 고통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똥친 막대기로 그냥 버려지지 않는 나뭇가지 '나'의 처지를 보니. 재희의 손에 들려 재희를 놀려먹는 개구쟁이 소년들에게로 부터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었던 기쁨과 함께 다시 물 가까이에 버려져 말라가던 몸에 수분을 채울 수 있었던 기쁨의 순간도 잠시, 모내기가 끝나버린 후에는 아주 버려진 채 아무도 '나'의 존재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어느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나'를 붕 떠오르게 했던 장마가 시작되었다. 희망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운좋게도 떠내려가던 돼지의 등짝에 달라붙게 되고 그 마을에서 한참 멀어진 벌판에 덩그마니 혼자 떨어져버린 '나'의 운명. 그 똥친 막대기는 그냥 말라 죽었을까?

작가가 보여주는 똥친 막대기의 여정이 딱 우리의 삶이다. 힘겨움속에서도 희망은 함께 한다는 메세지를 단 한번도 놓치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주고 있다. 비록 냄새나는 똥통속에 푹 빠졌던 '나'였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허허로운 벌판에 하나의 근본으로 우뚝 서는 또하나의 백양나무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음을 잊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몸속에서 근질거리며 희망이 뻗어나갈 때, 그렇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려 뻗으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나'의 존재가 바로 당신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 희열을 당신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책속의 그림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童話... 나는 그 말이 참 좋다. 거기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말해준다면 더욱 더 좋다. 내가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아니 내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그 안에 숨쉬고 있는 까닭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한편을 가슴속에 품어본다. 그 이야기.. 가끔 힘겨울 때마다 풀어본다면 참 좋을 것 같아서. 짧은 이야기였지만 참 좋은 이야기였다. 아들녀석 책상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그녀석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방식들이 그 안에 있다고는 해도 나뭇가지인 '나'가 들려주는 말을 한번 들어보라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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