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서 1천 엔짜리 지폐의 모델이기도 했다는 말과 국제적 명성을 지닌 20세기의 작가로 일본의 세익스피어라 불린다는 말이 흥미로웠던 까닭이었다. 한편으로는  인상깊게 읽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생각나기도 했고. <설국>에서 보여주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식의 심리전을 떠올리며 이 책을 보면서도 혹시 나스메 소세키식의 심리전에 휘말려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출판가를 평정하다시피하는 일본 문학의 고전을 대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 나라의 지폐속에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있게 밀어줄 수 있는 작가라는 말도 될테니 은근하게 밀려드는 기대감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만 때에 따라선 댁도 외로운 사람 아니오? 나는 외로워도 나이를 먹었으니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지만  젊은 당신은 다르지요.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이고 싶을 거요. 움직이면서 무엇엔가 충돌해보고 싶을거란 말이오"
"전 조금도 외롭지 않습니다"
"젊은 것만큼 외로운 것도 없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당신은 그렇게 자주 날 찾아오는 겁니까?"

책을 열자마자 만나는 화두는 외로움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이 책속의 두 주인공이 겪어내야 하는 외로움은 왠지 더 쓸쓸하게 다가왔다. 젊은 화자인 '나' 와 철저하게 개인적인 외로움의 감옥에서 끝내는 자살로 자유와 독립을 얻어냈던 선생님(여기에서 선생님은 교사가 아닌 일반적인 호칭으로서의 선생님이다)인 '나' 가 주고받는 말속에서 외로움은 끝없이 숨쉬고 있었다. 순수한 감정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일까?  진실된 모습만 보여주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일까?  알 수 없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편하고 이로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보게 된다. 이미 지나쳐버린 과거속의 상처로 인하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것 또한 죄악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나조차도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속의 화자인 '나'가 자주 찾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선생인 '나'의 마음을 들여놓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 그 자체보다는 인간대 인간으로써의 소통을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어느 날 우연히 해안가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야만 할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인하여 맺어진 인연 하나. 그 인연의 고리를 채우기 위해 그들이 나누어야 했던 대화들이 속속 내 가슴속에 눈처럼 쌓여가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나는 알았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상처가 되고 그 흔적 또한 깊이 남는다.  모든 것을 잃고 가까운 친척에게 배신당했다는 그 과거에 얽매여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린 채 스스로의 감옥속에서 생활하게 되는 소설속의 선생님이 그러한 예로 등장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상처받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숙집 딸에 대한 연정을 품었으면서도 사람을 믿지 못하는 그 아픔때문에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하숙집 딸에 대한 친구 K의 고백앞에서 더이상은 아무것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토록 절절한 친구의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이 먼저 사랑했던 여자를 빼앗기기 싫어 순간적으로 친구를 배반하게 되는... 하지만 느닷없는 친구 K의 자살은 그에게 죄책감이라는 올가미를 던져주고 말았다. 고독한 지식인... 친구를 배반하고 연인을 얻었지만 결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었던 그가 선택했었던 것은 술과 책의 수렁에 빠지는 거였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올가미를 풀지 못한 채 살아왔던 긴 세월.  마침내 누군가에게 그 자신이 겪어내야 했던 '삶의 고독'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때가 왔을 때 그가 택했던 자유로움은 자살이었다. 자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에 나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걸세...

젊은 화자 '나'에게 보내져 온 선생의 편지속에서 또다른 '나'로 등장하는 선생의 지난 모습. 그가 살아왔고 그가 견뎌내야 했던 그 시간들은 사실 그렇게 지독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봄직한 그런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토록 깊은 상처를 입었던 까닭은 믿었던 사람, 마음을 주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어떤 일들을 앞에 두고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는 그런 상황들이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나에게 거침없이 다가왔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외로움속에서 헤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에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다. 충분히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그가 택했던 길은 외로움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믿고 인정해 준다는 것이 그토록 힘겨운 일이었을까? 물론 쉽진 않았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야 했을까 나는 묻고 싶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을 참기보다 차라리 외로운 지금의 상태로 버텨가고 싶네. 자유, 독립 그리고 나 자신으로 가득 찬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가 이 외로움을 맛봐야겠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했던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세상에는 없다고 했던가?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억지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물었더니 '과'가 있습니다 했다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져가는 지금의 세상속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 자꾸만 끼어드는 세상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속의 선생인 '나'를 통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나 스스로의 족쇄를 채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은 이미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두고 있는데 내 자신이 그것을 의심하여 행복이 더디게 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어느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늘 누군가를 탓하며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 한번쯤은 돌아볼 일이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내게 오는 행복의 발걸음이 더디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