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과 최루가스가 길거리위에서 엉겨붙어 싸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학생이라면 그런 시위 한번쯤은 해야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념이 춤을 추고 그 너울거리던 춤사위에 숨이 막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던 사람들도 있었다.  행동을 하는 사람과 그 행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했던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이렇게 훌쩍 지나와버린 그 시간들속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이 있다면 행동하는 사람들의 질서였다고나 할까?  아무리 이념만을 외쳐대고 그 이념속에 묻혀 사는 그들이었다고는 해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차마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던 그들만의 질서를 기억한다. 한쪽으로는 화염병을 던지며 한쪽으로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 화염병의 피해속에서 피신시키고자 했었던 그들의 질서...  눈 밑에 치약을 바르면 덜 따가울 거라며 교복입은 채 출입금지였던 다방안으로 피신했던 여학생에게 다방주인이 내밀던 그 치약을 기억한다.

오현우... 행동하는 사람의 대표격인 인물설정으로 보여진다. 자신 스스로가 판사앞에서 '나는 사회주의자요' 라고 외칠 수 있었던 그의 가슴속에서 활화산처럼 솟아올랐던 그것은 '잠시만이라도 나만 바라봐주면 안되겠느냐' 던 그녀의 눈길조차도 외면해야 했다.  수배자.. 그리고 피신.. 외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정되어지지 않았던 동거는 또다른 이름의 삶을 잉태한다. 함께 있음으로 평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조차도 그에게는 사치였을까?  그의 살갗에 내려와 앉던 그녀의 사랑이 어쩌면 그에게는 바늘처럼 따가운 고통으로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랬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고통이 다시금  지나왔던 그 길을 바라보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수감되고 함께 행동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용서할 수 없었던 남자는 결국 왔던 자리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빗속에서의 이별.. 어쩌면 그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이 비로 승화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그런데 왜가니?  하던 여자의 독백이 빗속에 묻혀버리길 바랬는데 그 목소리가, 그 눈길이 빗속에 선명하게 자국을 남겨버린다.  수감.. 그리고 17년.. 모진 고문속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간간히 전해져 오는 그녀의 그림속 아이가 그에게는 무슨 말을 전해줄 수 있었을까?  세월은 참 무심하다. 이념도 행동도 그 세월속에서 무디어지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런게 아니라 그 세월이 무디어지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변해가는 게 세월일테니 말이다.

한윤희...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을 껴안을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찾아 든 한 남자에게 그녀는 말했었다. 이불이 하나밖에 없지만 머물러도 좋다고. 그리고 그들은 한이불속에서 머문다. 그 시간들이 행복이라는 이름을 달고 찾아왔다고 그녀는 생각했지만 '떠남'을 전제로 해야했던 그 남자에게는 그녀의 행복조차 펌프물처럼 그렇게 쏟아져 내리고 말지.. 된장국을 끓이고 두개의 밥그릇에 밥을 담고 상추쌈을 싸서 함께 먹고 싶다는 그 소박함조차도 현실은 인정해주기 싫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오래가지 못할 그녀의 삶을 이유로 그 남자를 떠나보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방황끝에 다시 외진곳의 추억속으로 되돌아와 그림속에 자신의 시간을 덧칠해 버렸을 때 그녀의 삶은 시한부였다. 그와 그녀를 닮은 아이를 키워주던 그녀의 엄마는 아마도 시간의 그림자였을 게다. 그 시간이 커가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엄마의 생명과 아버지의 고통을 받아 먹으며 달려가고 있다.  그녀의 죽음.. 그 남자의 출소.. 다시 찾은 그곳.. 그리고 회상..

회상... 잊을 수 없었던 그녀의 여운을 찾아 되돌아 온 그들만의 정원. 너무도 오래된 정원속에서 그는 듣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그녀의 시간들에 대해. 그리고 그 시간들이 아픔이었지만 결국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는 것을.  오직 당신밖에 사랑하지 못했노라던 그 목소리가 환영처럼 만들어낸 그녀의 영혼.. 그녀가 그의 어머니가 있는 집을 찾았을 때 가져왔던 오래된 그의 사진이 그녀의 그림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삶을 놓아버려야 하는 민머리 그녀곁에 나란히 서서. 그렇게 둘이었다가 하나가 되고 다시 둘이 되어야 했던 그들이 그녀의 그림속에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결코 다시 둘이 될 수는 없었노라고.. 사랑은 그렇게 그녀의 가슴속에서 우물같은 깊이로 머물렀었나 보다.  그 남자, 오현우는 그녀가 남긴 두레박으로 회상속의 사랑을 퍼올릴 수 있을까?  이미 지나가버린 그 회한의 시간을 퍼올릴 수 있을까?  은결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아이가 훌쩍 커버려 그들이 사랑을 나누었던 그 때의 나이로 그의 앞에 섰을 때 그는 알아버렸다.  그가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것은 사랑이었노라고. 그리고 이제는 그 두레박의 끈을 놓칠 수 없다고.

오래된 정원... 이 영화는 사실 너무 깊지 않았나 싶다. 보여주는 장면속에 깔아놓은 복선의 흐름이 너무 가파르다. 회상과 현실속으로 건너가는 돌다리를 건널 때 주의깊게 살펴봐야만 한다. 건너야 할 돌의 넓이와 돌과 돌사이의 간격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물 속에 빠져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이념과 타협하지 못한 자가 겪어내야 했던 삶도, 이념과 타협하며 살아냈던 자의 삶도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 없다. 어느것도 옳다 말할 수 없으며 그르다 말할 수 없을테니.  영화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말해주고자 하는 것조차도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으니 그것은 온전히 속울음일 뿐이다.  시대가 만들어낸 이념의 희생자는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변화는 우리가 겪어내야 할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함을 떠나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단지 여자는 아주 작은 행복 한자락만을 붙잡고 싶어했을 뿐이라고... 그리고 그 남자, 홀연히 떠나야 했을 뿐이라고...

모를 일이다. 사랑이 왜 그렇게 엇박자를 좋아했는지.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