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다리가 없는 친구가 있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다리없는 친구를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가 업고 다녔다. 그렇게 상대방의 눈이 되고 발이 되어주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책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전래동화속의 그 따뜻함은 보이지 않는다.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렸다. 과연 어느쪽이 장애인인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면 억지일까?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 칡넝쿨처럼 그렇게 얽혀 살아가는 모습에 왠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 이 책을 보면서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 와 <눈 뜬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온갖 사회의 부조리에 얽힌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려주었다는 생각에 상당히 인상깊게 읽은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 <언어없는 생활>을 읽으면서도 그와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을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한다는 건 그들에게는 정말 지옥 같았을 것이다. 세상 어느 구석을 보더라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너무 만연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만들어가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보면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책속에는 다섯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들이었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를 따라오던 그 느낌의 여운은 너무나도 길고 깊었다. '언어 없는 생활' -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 그리고 나중에 한 식구가 되는 벙어리 며느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들리지 않는 자신의 귀가 너무도 원망스러워 스스로 잘라내 버리던 아들의 모습과 단지 벙어리라는 이유로 다른사람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해야 했던 여자.. 그들에게도 마침내 아이가 생겨난다. 하지만 아이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가족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 아이조차도 귀와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마을사람들과 하나가 되지 못한채 채 완성되지도 못한 개울건너의 집으로 짐을 옮겨가던 날은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왔다. 소아마비로 인하여 한쪽 다리를 저는 한 아이의 성장과정속에서 드러나는 열망과 차별에 의한 열등감을 다룬 '느리게 성장하기' 는 성공을 향한 삐뚤어진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르게 가지 못했으니 그 성공이 제대로 자리 잡을리가 없다. 무너져 내리는 그의 성공이 가슴 아팠다. '살인자의 동굴' 은 이웃남자를 살해하고 동굴로 숨어든 살인자 아들을 극진하게 보살피는 모정을 이야기한다. 제 몸 하나야 어찌되었든 어떻게 해서라도 그 아들만큼은 살려내고 싶어하던 어머니의 마음. 저 하나만의 안위를 위하여 모두가 버린 아들을 지켜내고자 하던 모정은 정말 눈물겨웠다. 그리고 욕정에 시달리는 창녀촌을 고향으로 둔 한 남자의 이야기 '음란한 마을' 속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욕정의 사슬을 끝내 끊어내지 못한 한 남자의 절규가 담겨져 있다. 그것을 피해 달아났건만 다시 되돌아온 원점을 바라보며 회한에 젖는 한 사람의 여정을 아주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술과 게으름으로 아내와 아들을 돌보지 않는 뻔뻔한 가장의 예를 들려주던 '시선을 멀리 던지다' 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주변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야말로 가난이 죄가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한...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생각났다. 그 영화를 보면서 중국의 서민층이 살아가는 모습에 참 낯설고 생소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는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 책속에서는 너무 차갑고 냉정한 모습만 그려준 것 같아 '산다'는 말의 의미앞에서 잠시 서늘해지기도 했다. 어쩌면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표현들이 그렇게 느끼게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들을 끄집어내어 우리의 정서에 대해 한번쯤은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랬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과의 소통이 너무도 어려웠던 그들에게 과연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만큼이나 있었을까? 그들의 슬픔, 그들의 절망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일본소설이 난무하는 요즘 출판계의 흐름속에서 중국문학을 만났다는 것이 참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기회가 되는대로 중국문학을 만나 볼 요량이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