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기술
딘 R. 쿤츠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식상하다고?  물론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본다면 분명 식상할수도 있는 소재다. 하지만 그 식상함을 어떻게 녹일 수 있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은 달라진다. 그 흐름속에 독자를 얼만큼 끌여들여 함께 호흡할 수 있게 만드는가는 작가의 역량이다. 그런 면에서 주저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만큼이나 호흡력이 강한 작가라고 생각했었던 까닭이다. 그의 작품을 정말 오랜만에 접해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나는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숨가쁘게 달려가는 그의 발걸음속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어느정도는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미혼모 크리스틴은 여섯살짜리 아들 조이와 함께 행복한 쇼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주차장에서 그 노인과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조이와 함께 행복한 하루를 마감했을 것이다. 만약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초록색으로 휘감은 노인이 느닷없이 당신앞에 나타나 당신의 아들이 악마라고 외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에 그 지저분하고 괴상한 노인이 내 앞에 나타나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단연코 내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틴과 조이에게 죽음의 공포가 찾아왔다. 어쩌면 그것은 정신적인 환각일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저어보지만 엄연한 현실로 찾아오는 공포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망가거나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 뿐... 그래서 그들은 찾아나섰고 또하나의 동행자와 만난다. 사립탐정 찰리.. 이제부터 그들이 해야 할 모험의 길로 함께 따라나서야 하겠지만 이쯤에서 우리는 이미 그들이 어떠한 여정으로 접어들런지 조금은 아는 척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정해진 순서대로 그야말로 이미 예정되어진 그 길로 그들은 갈 것이기에.. 그 모험의 과정속에는 눈물나는 모정이 숨어 있을테고 엄마와 아이를 서로 묶어두었을 단단한 믿음의 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 빠질 수 없는 것, 찰리와 크리스틴의 사랑.. 긴박한 순간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날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것도 아주 깊은... 

범인은 이미 밝혀져 있다. 단지 범인이라고 증명할 만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 어쩌면 증거가 있어도 무형의 의미이기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얼만큼이나 허망한지, 사람의 마음이 얼만큼이나 간사하고 연약한지를 한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설정들이 가끔은 나를 서글프게도 하지만 신을 향한 사람의 오만함보다는 신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그 연약함이 그래도 나은 듯 싶은 것은 왜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영화 한편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물론 겹쳐지는 영화의 장면들이 많기도 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오멘>이다. 악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던 그 어린 소년의 모습이 크로즈업 되어 와 이 소설속의 조이와 하나가 되어버린다. 딘 쿤츠라는 작가는 이 소설속의 작은 소년 조이에게 알 수 없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혹시? 하는 의문점을 남겨두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크리스틴과 찰리의 마음을 통해서. 그리고 알 듯 모를 듯 묘하게 표현되어지는 조이에 대한 작가의 의구심을 모른척하고 넘어간다면 아마도 작가가 실망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의 마음속에 그런 것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속에서도 잠깐 다루고 있지만 그 파티마의 기적이라는 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그들의 내면속에 들어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의지마져도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아주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미쳐버릴 것만 같은 믿음이 생겨난다는 것은 어찌보면 어불성설인 것만 같다. 사람의 내면속에는 자신도 미쳐 알아채지 못한 아픔과 그 아픔으로 인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가 들어와 그것을 어루만져 주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었다면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 책속의 크리스틴이나 찰리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의 기억들을 안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기억의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며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 나는 참으로 놀라웠다. 섬뜩한 느낌마져 들었다. 어쩌면 이리도 표현을 잘했을까 싶었다. 황혼교단의 교주 그레이스만 보더라도 그렇다. 천년동안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기전에 악마의 씨를 말려야 한다던 그녀가 택한 것이 고작 여섯살의 어린아이였으니 더 말해 무얼할까?  그 여섯살의 어린아이를 선택해야만 했던 그녀의 그 깊은 내면속의 아픔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딘. R. 쿤츠... 역시 멋지다. 빠른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그야말로 크게 심호흡 한번 할 시간도 없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와처스>나 <사이코>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아 책을 읽는 동안  내심 즐겁기도 했다. 그렇게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스릴러의 참맛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촉박한, 도저히 살아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죽음의 상황에서 그야말로 기적처럼 살아나온 찰리가 묻고 있다. 혹시 조이가 초능력자는 아니었을까? 자신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 초능력자... 그레이스의 말대로 조이가 정말 악마라면?  어떤 쪽이 되었든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기로에 서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묻고 있다. 정의는 무엇인가?  수많은 선택중에 우리가 정의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게 있기는 할까? 그것이 항상 옳은 선택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이비생각

사족... 책제목이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 이 책의 어디에도 살인의 기술은 없었다. 아주 단순한 의미로 선택되어진 제목이라면 왠지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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