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루이비통 스피디백 중간 사이즈랑, 이브생로랑 뮤즈백 오버사이즈 보여주세요. 이번 시즌 다른 잇백들도 보여주시구요. 발렌시아가 시티백하고 샤넬 화이트 크로노 시계도.  신발은 무조건 하이힐로 주세요. 대신 귀여운 백 리본 스타일로. 아 참, 돌체앤가바나 벨트도 보여주세요" ... 이런! 저 중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몇개나 될까 한번 헤아려 보자. 얼핏 듣기에도 명품이겠지,하는 생각이 드는데 책속의 아가씨는 걱정말란다. 특급 짝퉁이란 말 한마디로.  미련스럽게 명품에다 연봉 밀어넣을 수는 없는거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후우~ 한다. 모 연예인이 신상을 자식처럼 여긴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리벙벙하던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역시 나도 기성세대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던 까닭에.

일단은 책표지에서부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까?  빨간 치마와 무지개 스타킹, 그리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의 다리 이미지만 보더라도 이 책속에서 젊음의 향기가 솔솔 품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자신감이 잔뜩 묻어난다. 일본소설이 판치는 요즘의 출판계에 우리의 젊은 여류작가가 내놓은 작품이라는 게 가장 먼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기존의 작가들이 보여주는 작품보다는 참신성을 느낄 수 있을거라는 기대와 함께..  역시 통통 튄다.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겠기에 한번 넘기기 시작한 책장을 끝까지 놓지를 못했다. 조 안나라는 스물 네살의 아가씨가 살아내는 삶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선택하고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기성세대의 편견에 그건 아니라고  한방 날려주고 있는 듯한 이 소설속에는 각박한 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젊은이들의 도전과 절망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남에 의해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 사장되어져 버리는 '나'라는 존재의 존재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돌아보며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여유를 한번쯤 가져보라는 충고 또한 잊지않고 있는 듯 하다.

시작...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이미 취업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기 이전에 어쩌면 선택할 수 조차 없는 현실에 더 아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속의 주인공 조안나 역시 후줄끈한 지방캠퍼스 출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죽어도 원이나 없게 하자는 마음으로 평소 가고 싶었던 자이언트 기획에 응시를 한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광고대행사에 덜컥 합격을 해 놓고도 그 합격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내노라하는 학력도 실력도 미모도 없었다, 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능력위주의 사회가 아직은 우리앞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요즘 뜨고 있는 '되고송'을 불러제끼며 자신을 PR 했던 조안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 진정한 실력을 따지며 합격여부를 결정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짝퉁 명품으로 치장을 한 우리의 조안나는 씩씩하게 첫출근을 하게 된다.

오해... 출근하자마자 주눅들어버린 그녀. 생각지도 못했던 느닷없는 대우에 어리둥절한 조안나는 좌불안석, 눈치보기가 바쁘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상황이 그녀앞에 펼쳐지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회사 전무의 동생이라는 둥, 친척이라는 둥 비비 꼬여진 말들이 수식어처럼 그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던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아부근성은 여지없이 발견된다. 행여나 부스러기 하나라도 생길까 미리부터 챙겨대는 주변 사원들의 그 씁쓸한 딸랑거림이라니... 어떻게 좀 해볼까 비벼보는 그 치사스러움이라니... 당당한 공채로 실력을 앞세워 들어온 우리의 주인공 조안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흘러만 간다. 내가 만들어내는 내 이미지보다도 타인이 만들어내는 내 이미지가 구름처럼 그녀를 둥둥 떠다니게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녀의 순발력이 빛을 발하지만 그 빛마져도 구름에 가려져 버려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풋사랑... 사랑은 예고없이 찾아온다.  그녀에게 어찌어찌 해볼까 하는 심산으로 들러붙었던 남자사원 정경호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만 심한 모욕감과 상처만을 안아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작정하고 사실을 말하게 된 또다른 선배 나 빈우만큼은 그녀에게 따스함을 전해주고 간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가슴 한쪽의 떨림. 부정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그들의 관계때문에 다시 흔들리던 그녀앞에 나 빈우의 옛애인이 찾아오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거기에다 자신이 만들어내지도 않은 그 배경이 바위덩이처럼 그녀를 압박해 오고... 이쯤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봄직한 사표에 대해 고민하게 되지만 우리의 주인공 스물네살의 아가씨는 결코 질 수 없다고, 오로지 일로써 승부를 걸어보자고 다시 다짐을 한다. 조안나 화이팅이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도전... 일도 사랑도 모두 가질 수 있다면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기에 젊다는 것은 열정이며 또한 그 열정으로 인한 아름다움일 게다. 사표에 대한 고민을 거두어 들이고 일에 매달리는 조안나의 앞길에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토록 냉담하던 여상사의 마음까지 얻어가면서. 하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또한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불협화음이 있다면 타협의 문도 항상 열려 있다. 거기에는 진실이라는 열쇠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소식없던 나 빈우가 찾아와 함께 일해보자며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는 동시에 일과 사랑을 거머쥐게 된다. 나도 한번쯤은 해 보고 싶었던 번지 점프. 뛰어내리던 나 빈우를 따라  내 마음도 뛰어 내린다. 떨어지는 기분이 환상적이다. 어디선가 들은듯한  '도전하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책을 읽으며 요즘의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감각을 만나볼 수가 있었다. 그들이 겪어내는 도전과 인내가 우리가 살아왔던 그 시절과 다를까? 세상이 눈에 띄게 바뀌었으니 어쩌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꿈과 희망을 쫓아 도전하는 모습은 정말 멋졌다. 겉치레와 형식의 틀에 얽매인 각박한 현실과 싸워 마지막까지 이겨낼 우리의 젊은 세대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또한 우리에게도 이렇게 멋진 청년문화를 그려낼 수 있는 작가가 있음에 더욱 더 든든하다. 일본 작가가 아닌 우리의 작가가 보여주는 성장소설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아이비생각

"니 잘못 아니니까 마음 상하지마. 알아서 기고. 제멋대로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이잖아. 그리고 사탕 같은 걸로 마음 달래는 거 하지 마. 마음이 춥다고 허전하다고 달콤한 걸로 메워지지 않는다는 거 이제 알 때가 되지 않았니?" .. 나 빈우가 우리의 주인공 조안나를 안아주며 해 준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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