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먹먹하다.  가슴속을 무언가가 쓰윽 훑고 지나간 것만 같다. 저마다의 몫으로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가 다르기에 어쩌면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더 무겁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느님, 왜 제게만 이토록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셨습니까? 물으니 그렇다면 저사람의 십자가와 바꿔 보겠느냐? 하여 바꾸었지만 그 역시도 만만찮은 무게였다는 이야기.. 어찌되었든 온전한 나만의 몫이기에 그토록 무거운 것일게다.. 아니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일게다..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아버지.. 과연 아버지란 존재가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질서이면서 정의가 아니었을까?  어느날 불현듯 소식도 없이 나의 공간속으로 들어와 웅크린 채 살아가고 있던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미 오래된 흉터처럼 되어버린 지나가버린 날들에 대한 회한을 불러온다.  그 흉터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이 나 자꾸만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것들을 기억이라고 말해야 할까, 추억이라고 말해야 할까.. 가족을 내팽개치고 혼자만의 생활속에서 허덕이던 아버지의 인생은 역시 온전히 아버지만의 몫일 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흩어져버린 엄마의 마음이 외할아버지인 짱구영감이 나타난 뒤로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어린 나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엄마의 모습이자 또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으며 불쑥 커져버려 이미 지나간 시간들을 회상하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굳이 한밤중에 일부러 선명한 소리를 내며 손톱을 깎아대던 그 딸의 원망을 아버지는 벌써 알고 있었을 게다. 목각인형처럼 굳어버린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수고많으셨다고 한마디 해 줄 수 있었던 딸의 마음속에 우물처럼 고였을 그 눈물이 보이는 것만 같아 나도 가슴이 울컥했었다.  엉킨 실타래 같은 삶의 한 모퉁이에서 울먹이며 도움을 청하던 그 딸의 마음을 아버지는 아마도 고스란히 안고 가셨을게다.  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듬어주기 위해 신새벽길을 걸어 뻘밭에서 캐낸 피조개 두 양동이를 들고 왔던 아버지의 마음을 딸도 고스란히 안아 들었을게다.. 어린 시절에 짱구영감과 어머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풀지 못했던 매듭을 하나둘씩 말없이 마음만으로 풀어나가는 짱구영감과 어머니.. 그 시간이 너무 짧을까봐 애를 태우며 어쩌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짱구영감은 죽음조차도 유예시켰는가!.. 가족이다. 진정으로 가족이란 의미속에서 풀리지 않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단지 고집피우며 앙앙거릴 뿐..

어머니에 대해 생각한다. 어머니.. 그 존재감속에 함께 하는 안정과 평안의 소리들.. 그 소리들이 있어 어쩌면 우리는 이 버거운 삶의 여정을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어머니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게다. 늘 곁에 있어주었기에 존재감마져도 느낄 수 없었던...  우리의 부모세대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느냐고는 묻지 못할 것 같다. 끝내 가슴속의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던 책속의 짱구영감을 보면서 내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저녁놀 지는 마을에서 나는 생각해 본다. 단지 시대적인 배경만이 변했을 뿐이라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이라는 의미는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변할 수도, 변해서도 안되는 거라고..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깊숙한 곳의 울림은 정말 감동적이다. 차마 말로는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조용하게 바람결처럼 나를 훑으며 지나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져오는 마음의 소리가  쏟아져버린 물처럼 흥건하게 나에게 젖어든다.  그리고 그 안에 포근함도 담겨져 있으니 넘기는 책장마다 하나씩 찾아지는 아련함이 참 좋다.  아무리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것들.. 저녁놀 지는 마을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별것 아닌 이야기 같은데  이상하게도 꽤나  묵직하게 느껴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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