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고 잠시 생각하던 순간까지도 나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역시 중국이야기인가? 하다가도 한편의 그림 앞에서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건 어쩌면 세계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또한번 하게 된다.  그림 한편을 앞세워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어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어쩌면 그림이 안고 있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하지만 왠일인지 스스로 그런 설정들을 늘어놓으면서도 느껴지지 않는 책 속 세상 이야기가 저 먼곳 어디쯤의 이야기로만 전해져 왔던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베르메르'라는 이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속에 자연스럽게 따라왔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속 이미지 '진주 귀고리 소녀' 의 강렬했던 그 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까닭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림과 겹쳐졌던 역사속의 한 시대적 배경이 주었던 그 강렬함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까닭일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어쩌면 그 작품에서 비롯되어진  느낌들을 연계받았으면 하는 기대심리가 작용했을거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림을 따라가는 세계사인지 아니면 세계사의 흐름속에 그림을 끼워넣었는지 그것은 모르겠다. 단지 한편의 그림속에서 역사 따라잡기를 시도한 것만은 확실하게 보여진다. 그 역사 따라잡기의 중추적 역할은 단연코 중국이다. 서양과 동양의 마주침을 중국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문화적인 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부와 가치관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중국사를 공부했던 작가의 이력답게 중국을 주체로 세계사의 변화를 읽어냈다는 것이다.  유럽사람들에게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던 중국이 안고 있던 이미지들, 그리고 그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힘겨워했던 중국의 모습..  이미 오래전에 읽었던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이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커피를 둘러싸고 벌어지던 무역의 현장속에서 그들만의 생활상을 엿보던 재미도 쏠쏠했던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은 참으로 많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는 약간 의아스럽기도 했던 비버 펠트 모자가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보면서 슬며시 웃어보기도 한다. 은은한 빛을 발하던 중국 자기에 빠져들어 감탄을 자아내던 유럽 사람들, 좀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그 모험속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었던 세상은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넓혀지는 교역망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순간은 아마도 또다른 시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진통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바라보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와중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그 흐름속에 아주 짧게 등장했던 조선의 빗장은 역시 굳게 닫혀 있었다.  포로의 입장이었지만 조선식으로 손님이었던 서양인이 조선사람으로 반평생을 살았다는 일화를 보면서 개방적인 시선으로 세계를 읽지 못했던 우리의 가치관이 아쉽기도 했다.

서로 필요한 것들을 나누기 위해 무역을 시작했고 그 무역이 발전함에 따라 변해가는 사회의 모습..  그야말로 빛이 있으니 그림자도 생겨났다. 해적이 있었고 많은 배들이 난파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던 비극을 낳기도 했다. 좀 더 많은 일손이 필요했기에 아프리카의 엉뚱한 흑인들이 노예로 전락해야만 했고 사람이 하나의 물건처럼 부의 척도가 되어야 했던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작가가 보여주는 그림속의 세상이야기는 큰 파도를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작은 포말이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단지 그 변화의 물결속에는 많은 아픔이 있었다는 것, 그 변화의 물결속에는 늘 힘없는 자들의 외침이 있었다는 것, 그 변화의 물결속에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할 따름이다. <델프트의 풍경>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 <지리학자> <저울을 든 여인> <카드놀이>... 작가가 보여주는 그림의 제목들이다. 저 그림들속에 녹아든 세계사를 바라다 보았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속에서 나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눈빛이 전해주었던 그 애잔함을 느끼지 못했다. 소소한 일상을 그려냈다는 책설명글처럼 다가왔던 것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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