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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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에 물들다는 제목을 보면서 그리고 책표지를 보면서 평상적인 느낌으로 色에 관한 이야기겠거니 한다. 영화를 통해서 보았던 色에 관한 느낌은 대체적으로 내게 너무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것 같다. 어느 색을 막론하고 色이 품고 있었던 것이 아픔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무리일까?  책표지로 선택되어진 빨갛고 파란 色을 바라보면서 책장을 열었다.  티베트..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라는 말이 있듯이 나 역시도 기회가 오게 된다면 이 나라를 한번쯤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던 티베트의 독립 이야기보다는 내게 한발 먼저 다가왔던 라싸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달라이라마라는 인물에 대해, 티베트라는 나라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안고 있었던 종교적인 삶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던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이 영상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자유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 특정한 규칙을 정해놓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경험 많은 사냥꾼이 만드는 함정보다 더욱 확실하다.(30쪽)
참 아이러니하다.  자신들의 그 특정한 규칙으로 인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하니 그것이 참 미묘하다는 말이다. 어째서 그럴까?  타인에게 통제받기 싫어하면서도 누구나 통제하길 원하는 그 모순이 어쩌면 우리 인간의 속성은 아닐지... 처음엔 양귀비라는 이쁜 이름을 가진 붉은 색이 그들을  찾아왔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지만 책속에서 보면 단연코 그들은 원했다.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그래서 물들기 시작한 그들에게 또하나의 色은 어쩌면 변화의 色이었을 게다. 그 붉은 색이 전해주었던 끝없는 욕망의 나락속으로 그들은 빨려들어갔다.  그들속에 파고들던 色의 환상앞에서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던 그들의 삶.. 나는 그 삶이 서러웠다. 누구보다도 높이 그리고 누구보다도 견고한 城을 쌓기 위해 그토록 힘겨운 시간과 싸움을 하는 그들의 삶이 서러웠다. 하지만 작가는 그 서러움을 우리의 주인공 바보아들을 통해 걸러내 주고자 한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한 아이가 그 순수함을 바탕으로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속에는 참으로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서로 엉키어 함께 어울어지는 그런 삶이...

투스.. 일종의 부족장이면서도 나름대로는 왕의 의미까지도 포용하고 있는 그들의 투스제도 아래에서는 결코 투스가  될 수 없었던 바보아들은 둘째였다. 느끼는대로, 보여지는대로 그리고 주는만큼만 받으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줄 알았던 그 바보아들에게는 사랑과 멸시가 함께 따라다녔다. 무너져가는 그들의 시간앞에 우뚝 버티고 선 희미한 희망과도 같았다. 그 희망이 서서히 밀려들어오는 중국이라는 거대 물결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때로는 숨한번 크게 들이켜며 변화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정해 줄 수 없었던 그 바보를 인정해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늘어갈수록 아무도 흉내낼 수 없었던 바보 도련님의 순수는 하나씩 허물어져 간다. 너는 똑똑한거냐, 아니면 진짜로 바보인거냐? 묻고 있었던 아버지조차도 사실은 바보라고 믿고 싶어할 만큼 우리는 모두 그 욕망이 없는 상태의 순수한 영혼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권력과 힘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이치의 강력한 투스.. 그가 불러 들였던 붉은 색과 백색의 욕망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세습되어지던 권력의 힘을 나누어 갖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면서 바라보았던 바보아들에게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던 까닭은 또 무엇이었을까?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불공평했지만 강력했던 그들의 신분제도조차 바보아들앞에서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걸 보면 현실은 끝없는 힘과 욕망을 허락하지는 않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현실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왜 종교가 우리에게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는 원한을 가르쳤는가?'..(1권 250쪽)
티베트는 불교국가이다. 그들의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에게서 불교라는 종교를 떼어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책속에서는 그 종교를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 종교적인 의미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건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틀, 너무 견고한 그들의 삶의 테두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변화가 어느날 갑짜기 찾아 왔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 둘씩 변화를 불러오기 위한 전주곡이 울리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인정하기 싫었던 것일게다. 혀를 두번씩이나 잘려가면서 끝내는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수도승 웡버이시와 바보 도련님의 말없는 대화는 참으로 경이롭다.  그의 혀가 잘림으로써 그들에게 다가오던 미래의 色은 무채색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자신도 모르는 예지능력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오직 한사람 바보 도련님에게 말없이 그 길을 일러주는 그의 의미가 내게는 왠지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주 불편한 진실을 아주 편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을 보게 된다.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것보다 그저 조용히 그 아픔을 참아내는 모습은 더욱 더 안스럽게 느껴진다. 바로 이 책이 그런 것 같다. 이미 다가와 버린 슬픔을 소리내어 울기보다는 참아내기 위한 서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色으로 표현되어지던 욕망의 시작과 끝..  붉은 색의 황홀함으로 피어났다가 백색의 허망함으로 꽃과 함께 시들어버린 그들의 욕망은 너무 헛되고 헛된 것이었음을 바라본다. 자신이 죽을 때를 이미 알고 있는 바보에게는 죽음조차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와야 할 것들은 온다. 가야할 것들이 가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어떤한 것이 되었든 보내고 맞이하며 변화하는 삶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단지 그 먼지같은 욕망과 터럭같은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니 그것이 서글픈 일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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