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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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도 원주민이 산다?  정말 그랬다면 과연 그들은 지금 어디로 떠난 것일까?  변화라는 말, 혹은 진화라는 말을 생각한다. 과연 우리에게 변화와 진화는 꼭 필요한 것일까?  그 변화와 진화라는 말 뒤켠에는 아마도 우리가 잠시도 떠나보낼 수 없는 어떤 것, 편리함이라거나 편안함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 편리함이라거나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우리가 지나왔던 모든 것들은 하나의 추억, 하나의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겠지...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왠지 가슴이 찡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정말 그랬다. 그저 그런 만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짧은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일전에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인천에 있던 '달동네 수도국 박물관'을 찾았을 때도 나는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었는데 이 책속에 들어서는 순간 글자를 따라가는 나의 눈길은 역시 더디기만 했다. 아픔일까?  작가가 말해주고 있는, 어쩌면 지금은 존재의미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을 대한민국 원주민들이 안고 있는 그 기억이라는 이름은 진정 아픔이었을까? 하지만 이 책속의 원주민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진정 아픔은 아니었다고...

동네 어귀에서부터 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바짝 긴장했던 기억이 내겐 있고, 기르던 개를 '퍽'소리나게 때리며 환하게 웃던  동네아저씨가 미워 그 날 이후로는 저만치에 아저씨가 보이면 인사 안하겠다고  되돌아갔던 기억도 내겐 있다. 눈만 오면 너도 나도 경쟁하듯이 연탄재를 깨뜨려대던 언덕길의 풍경도 이제는 저 먼 기억속으로 던져버렸는가? 똥퍼! 를 외치며  똥지게를 지고 가던 똥퍼아저씨.. 머리카락 팔아요! 하던 구슬픈 목소리의 주인공.. 칼 가알어~, 우산 고쳐어~~... 돌아보면 정겨운소리들이다. 돌아보면 가슴 켜켜이 쌓인 먼지 같아서 풀썩거릴 때마다 기침이 난다. 그런 시절을 살아냈던 사람들이 원주민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우리는 지나쳐버린 것에 대한 홀대를 배웠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지나간 것들이 있기에 지금이 있음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가 보여주는 시절속의 주인공들은 그런 세월을 살아냈으면서도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고, 이쁜 이야기만 그려달라고 한다. 뭐가 이쁜 이야기일까?  벌써 그렸다고 덤덤하게 한마디씩 툭 뱉어내듯하던 작가의 그 심중이 어찌보면 재미있기도 하다. 이렇다 할 그야말로 특별한 이벤트 한번 없이 살아냈던 시절이었음에도 그들은 그것이 행복이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쯤에서 나는 또 나자신에게 반문해본다. 그 시절이 정말 행복이었는지.. 하지만 단연코 나는 그것이 행복이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저 그 시절에는 모두 다 그렇게 살 수 밖에는 없었던 거라고 위안삼아 투덜거릴 뿐이다. 

어쩌면 만화였기에 더 간절한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긴 장문으로 표현을 하든, 짧은 단문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든 같은 이야기였을지라도 단 한컷의 그림이 주는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다보지도 말아야지 했던 기억속으로 다시한번 들어갔다 오니 새삼스러운 즐거움과 가슴아픔이 함께 뒤엉키고 말았다. 엉킨 실타래같은 가슴 한켠을 쓸어내리며 책장을 덮었지만 나는 그 시절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내 지난 날의 그 기억들은 진정 행복이었을까? 되물어보지만 역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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