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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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 사전적 혹은 사회적인 의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따로이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조차도 왠지 웃음이 난다. 우리의 주인공 니은이 엄마,아빠를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그 시간속에는 어른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 있다. 그 어른이라는 것이 어느 한순간에 습득해버릴 수 있는 자격증같은 것이라면 몇날 며칠을 밤새워가며 공부를 해서라도 그 자격증을 따고 싶은 게 그때의 니은이 마음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한꺼번에 너무 크게 다가온 상실감을 '이것이다'하고 정의내리기 전에 우리는 이미 그녀에게 이겨낼 수 없는 무게로써의 어른을 기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커다란 삽이 허공에서 나와 가슴을 한 삽씩 퍼내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슬프지도 않은데 심장을 한 삽씩 잃어버리는 허전함만 생생했다.(23쪽)
아픔... 그것은 아픔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게를 알 수 없는, 크기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우물같은 그 느낌속에 빠져서 헤어나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니은이를 통해서 몇년전 아버지를 보내드렸던 때가 생각났다. 다른 집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다 보지 못하면 눈을 감지도 못한채 헐떡이며 기다려주었다는 데 우리 아버지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가버리셨다. 위독하다는 말에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지 몇분도 안되어 나는 아버지의 부음을 들어야 했었다. 눈물조차도 없던 그 이별의 순간이 떠올랐다.  니은이에게 현실이지만 현실적이지 않게 다가왔던 부모의 교통사고 소식은 어쩌면 아무런 감정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 자신 하나만의 감정속에서 허우적거렸다는 게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주변인물을 통해 들려 주었던 '어른이 되기 위한 작전'들은 차라리 눈물겨웠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처럼 어떤 일이 내 앞에 놓인다해도 그저 무덤덤한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 것.. 무표정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 아프더라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

" 니은아, 니가 시원하게 못 울어서 몸이 아픈 거다. 슬픔이 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몸을 두드리는 거지" (64쪽)
정말 슬플 때는 크게 울어버리라고 했었다. 차라리 울어버리고나면 속은 후련할 거라고도 했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크게 한번 울지 못하는 니은이의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수증기를 내뿜던 압력밥솥..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니은이는 결코 울지 못할것만 같았었다. 아직은 니은이에게 달라붙지 못한 그 현실감각이란 놈이 저만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자기 몫의 슬픔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서글픔 때문이기도 하리라.. 아직은 어린 니은이의 철없는 어른되기가 주변사람들에게는 안타까웠을까?  말없이 니은이의 슬픔을 대신 안아주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허물처럼 그렇게 하나 둘씩 슬픔을 인정하며 벗어버릴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할아버지 뱃속으로 들어가던 날 개뼈를 묻어주며 울어다는 이유로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고 했었다. 그리곤 20년동안을 한번도 울지 않았다던 엄마의 마음은 아마도 슬픔보다는 상실감이었을 게다.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 상실감, 태어나서 온 마음을 다해 주었던 그 情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무엇보다도 컸을게다..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정해둔 규칙 같은 건 있어.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그 네 가지만 안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220쪽)
처용과 황옥놀이를 하던 엄마 아빠의 기억을 통해서, 그리고 처용포의 수많은 전설을 통해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설정이 내 가슴속에 너무 깊이 파고 들었다. 처음엔 그저 아이의 단순한 성장통이려니 하다가, 어른이기에 겪어야 했을 사회적인 모순성들에 아파했고, 그 모순들이 엮어내던 갖가지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며 제 몫으로 하기 위해 힘겨워하던 많은 사람들때문에 더 아파해야 했다.  고래가 죽어가는 순간 마지막 숨을 쉴 때 피가 섞인 빨간 물기둥이 솟아오르지, 그것을 우리는 꽃이 핀다고 말한단다... 그래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거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루어지기 위해서 혹은 이루어내기 위해서 거쳐가야할 고통의 한 순간이 분명코 오리라는 그 진리.. 징징거려서도 안되고 변명하거나 핑계대지도 말며 잘 풀리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원망해서도 안되는 그런 규칙들이 필요한 때, 바로 그런때가  어른되기 작전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닐까?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일은 왜 중요해요?"
"그것을 잘 떠나보내기 위해서지. 잘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나도 기억하는 방법을 몰라서 저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내 인생을 낡은 물건들을 쌓아두는 창고로 만든 셈이지. 잘 떠내보내고서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걸" (236쪽)
그랬던 장포수 할아버지도 자신속에서 살아숨쉬던 그 신화같은 삶을 잘 떠나보내지 못했다. 니은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들을 살아내고서도..  이제 다시는 고래잡이를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래잡이를 하던 때의 자신과 떨어질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어느 새벽 그렇게 전설 같았던 할아버지의 고래배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삶의 버팀목으로써 그것들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내고나서 기억하기 보다는 차라리 안고 사는 게 할아버지에게는 더 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가 버린 것은 전설이 된다. 우리가 사용하지 못하고 버린 시간이나 사용하고 버린 시간이나 똑같이 전설이 된다. 고래잡이를 하며 살아가던 마을에 비행기가 날았고 그 비행기가 정유공장을 토해냈으며 그 정유공장은 오염과 폐수를 토해냈다. 그 오염과 폐수로 인하여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들이 죽어버릴까봐 시뻘건 언덕위에 나무를 심던 할아버지.. 다시 아버지를 생각한다. 어쩌면 자식들 보기에 부족한 삶이었다기보다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던 그 옛날의 시간들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늘 아픔이었던 나의 아버지.. 어쩌면 내게는 또하나의 전설로 남아 내가 사용해야 할 시간속에서 불쑥 불쑥 그렇게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를 찾아다니는 파도가 되지 않을라고 그런다"
"파도가 바다를 찾아다닌다고?"
"우리 스님이 그러더라. 파도가 온 바다를 돌아다니며 보소. 이보쇼. 바다가 어디 있는지 아오? 그런다고. 내 평생 그 꼴이 아니었나 싶다" (246쪽)
너무 무겁다. 책을 덮었으면서도 나는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를 못한다. 너무 무거워서 다시  들어올릴 수가 없다. 니은이를 통해 들었던 처용포의 슬픈 이야기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우리가 살아낸 시절속의 아픔,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시련, 우리가 살아내야 할 먼 시간속의 애달픔이 하나로 녹아져 있음이다. 니은이 얘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이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니은이가 겪어내야 할 운명같은 걸 말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내 운명의 시간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장포수 할아버지를 대면시켜서, 왕고래집 할머니와 대면시켜서 나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라고 한다. 바다를 찾아다니는 파도가 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어른일까? 내 삶의 등짐을 내가 지고 가니 나는 어른이 분명할게다. 그런데도 나는 그 신화같은 삶의 고리들이 싫을 때가 많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면서도 그 삶의 고리들이 하나씩 끊어져버렸음 할 때가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니은이가 기억하고자 했던 어른되기의 규칙을 나도 따라해봐야 할까보다.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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