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년 모월 모일.. 나는 죽었다> ... 어린 영혼의 독백으로 시작되어지는 이 애니는 가슴절임을 안고 있다. 전쟁속에서 공습을 피해 반공호로 숨어 들었던 엄마는 피격을 당해 화상으로 죽고 어린 남매는 살아 남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아마도 장교였던 것 같다. 부족함없이 자라던 이들 남매에게는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고아가 되어버린 현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정말이지 참담하다. 그 극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들은 어느 영화, 어느 장면을 보더라도 느낌이 비슷하게 다가온다. 문득 오래전에 보았으나 아직까지도 깊은 감동의 선율을 떨쳐내지 못하는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영화속에서 아버지 로베르토 베니니가 아들 죠슈아에게 보여주었던 놀이로써의 전쟁이미지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가슴 한쪽이 서늘해져 온다. 잡혀가는 아버지를 숨어서 지켜보던 아들 죠슈아.. 어린 죠슈아가 행여 밖으로 나올까봐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던 그 순간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남매가 겪어내야 할 전쟁의 참상보다는 이웃들의 정에 관해 포커스가 맞춰진 듯한 이 영화는 내내 안타까움에 가슴 조이게 한다. 엄마를 화장시키고 그 뼈를 담은 항아리를 숨겨둔 채 숙모의 집으로 들어가던 세이타의 모습은 서글프다. 어린 남매를 떠맡고 이미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숙모.. 단순히 양식을 얻기 위해서 그 아이들에게 남은 유품을 팔아야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숙모와 어린 남매의 관계는 거짓됨과 과장됨없이 처리된 듯하여 보기에 안스럽기까지 하다. 엄마의 기모노에 베인 엄마의 냄새를 잃어버리기 싫어 굳이 엄마의 기모노만큼은 가져가지 말라고 울며 떼를 쓰던 세츠코.. 아직 어린 세츠코의 가슴속에서 얼만큼의 시간동안 그 엄마는 살아줄까? 아마도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날마다 얼굴을 마주쳐야 할 이웃이라는 이유보다도, 같은 피붙이라는 이유보다도 더 간절했던 것은 내가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었을게다. 그러니 그 어떤 상황이 온다한들 확실하게 드러나는 그 진실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 남매의 힘겨운 여정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저마다의 의식이 너무도 서글펐다. 어린 동생 세츠코를 위하여 공습 경보가 울리는 마을을 향해 달려가던 세이타와 그 공습을 피하기 위하여 마을을 벗어나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던 장면속에는 삶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숨어 있었다. 그 선택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동생의 배고픔뿐이었을까? 세이타는 자신의 배고픔조차도 힘겨웠을 것이다. 남의 밭에 들어가 훔치다가 주인에게 잡혀 흠씬 두들겨 맞은 채 일본 순사에게로 끌려가는 세이타의 뒤를 따르는 어린 동생 세츠코.. 이 영화를 만든 작가는 아마도 그런 마음을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훔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이 이 아이에게 행한 폭력은 어찌할 것이냐고 되묻던 일본 순사의 말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던 그 비장함이라니... 굶주림으로 죽은 동생 세츠코를 불에 태우고 그 뼈를 사탕통에 담아 간직했던 세이타도 고베시의 한 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저 많은 죽음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오래전 친척과 이웃의 질시를 이겨내지 못하고 동굴로 피신해왔을 때 어둠을 밝히기 위해 병속에 담았던 반딧불.. 아침이 되어 그 반딧불들의 묘를 동굴앞에 만들어 주었던 세츠코.. 돌아갔을까? 세츠코도 세이타도 그 반딧불이 되어 자신이 가야할  길고 되돌아 간 것일까?

이건 뭐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외치고 있군... 이 영화의 마지막을 바라보면서 내가 뱉어낸 말이다. 그랬구나..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속마음은 따로 있었구나 싶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도 피해잡니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왜지? 영화를 같이 보았던 내 엄마가 한말씀 하신다. 우리는 더했다, 이놈덜아.. 나는 엄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전쟁의 참상을 겪지 못한 세대였기에 왠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면 억지스러울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나 똑같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어디나 똑같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너무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것은 아닌지... 이 영화를 통해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떠들어대는 그 속마음이야 알아챘던 말건, 어찌되었든 우리는 주변의 무관심속에서 사라져가는 그 사람냄새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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