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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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하여 책을 알게 된 케이스다. 그저 평범한 동화였을거라고 믿었던 걸리버여행기에 대해 다시한번 읽게 되었던 동기를 부여해주게 되었다는 건 나에게 큰 의미를 갖게 하기도 했다. 사실 큰사람들의 나라에 갔던 걸리버나 작은 사람들의 나라에 갔던 걸리버의 모습은 하나도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와 말들의 나라를 여행했던 걸리버의 모습은 또하나의 놀라움이었다. 읽기에 쉽지 않았던 이 책이 왜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로 소개되어져야만 했을까? 책속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은 큰사람들의 나라나 작은 사람들의 나라조차도 받아들이기에 편한 것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게 가장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독한 팬임을 자처하는 나로써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원작이 어찌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애니메이션은 곧잘 아이들만의 전용으로 치부되어지기도 하지만 하야오 감독의 작품은 차라리 어른들만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많은 것을 던져주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는 그의 작품이 나는 참 좋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 책속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는 허둥대야했다. 발음하기조차 힘겨운 지명이나 인명들이 우선을 껄끄러웠고 이야기속에 감춰둔 의미들이 너무 무겁기만 했다. 이 책을 이해하며 읽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 슬쩍 묻어가려고 했지만 그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특히나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를 여행할 때에는 내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잊으면 안되는 것들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이 진정한 사람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되짚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말들의 나라에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았던 걸리버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말들의 나라에서 내가 배웠던 것은 참으로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그 나라의 수준을 다 이해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파내도 파내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엇들을 이 책은 너무나도 많이 안고 있다.

뒷부분의 해설에서 보면 이 소설의 잉태기간이 약 15년이었고 실제로 집필에 종사한 것도 5년 이상이 걸렸다고 하니 작가의 심적 무게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정치적인 배경이 참 많이 나온다. 그 모든 것들이 작가가 집필하는 동안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하니 작금의 정치현실과 비교해볼 때  참 아이러니다. 작가가 성직자였다는 말에 또한번 놀란다. 책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폄훼나 혐오감은 그럼 뭐란 말인가.. 자연앞에 작아져야 할 인간의 오만함을 찍어 누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직설적인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내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특히나  과학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했다고 느껴지던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편에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일종의 풍자소설일까?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정치세계를 비꼬아 주고 싶었던 것일까?  마지막 여행지였던 말들의 나라에서 돌아와 말처럼 살기를 원했던 걸리버.. 그 걸리버의 마음으로 다시한번 힘겨운 여행길에 도전해 보고 싶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감상노트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나에게 다가왔었는지, 무엇을 어떻게 내가 따라 갔었는지를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책이 단순하게 어린이용 도서로 읽혀졌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작자가 의도하고 있었던 그 무엇, 너무도 깊고 단단했던 그 무엇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리버는 돌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그 여행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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