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제 자야지... 침대에 누웠는데도 나는 킥킥거린다. 완득이와 선생 똥주 사이에서 양념 역할을 해 주었던 앞집 아저씨의 존재가 생각나서. 그리곤 웃음이 눈물로 변해버린다. 혼자서 훌쩍거렸다. 수급대상자이면서도 마음으로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완득이의 속깊은 서러움이 생각나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민층이란 테두리를 둘러쳐 놓은 세상속을 걷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삶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또한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세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살아왔던 먼 날의 기억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책을 읽기 전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완득이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그 삶의 여정속에서 내 모습을 찾아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했다. 완득이.. 완득이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인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완득이 안에 숨겨놓았을 작가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저리도 신랄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서민층의 모습을 그려낼 수가 있는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작가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미 다른 동네로 이사가 버린 하나님한테 똥주 좀 죽여주세요 기도를 하는 완득이..  등에 제 집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달팽이처럼 건드리지만 않으면, 옆구리 찌르지만 않으면 그저 조용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완득이를 세상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난쟁이인 아버지를 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인데 그것조차도 세상은 완득이더러 나쁘다고 한다. 고슴도치처럼 사랑을 가슴에 숨겨놓아야 했을 난쟁이 아버지의 서러움을 누가 알까?  선생 똥주의 접근조차도 완득이에게는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었을 게다. 이해하는 척하는 것과 진실로 이해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완득이는 이미 안다. 어쩌면 그런것들이 싫어서 제 속으로만 숨어들었을 게다. 하지만 진실은 통한다고 했던가? 방법이야 어쨌든 선생 똥주에게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완득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세상은 어차피 혼자 살수는 없는거지.. 한다. 나 역시 완득이처럼 나하고 상관없는 일에는 지독히도 무심하게 살았었다. 완득이처럼 서로 피해 안주고 조용히 살다 죽는게 장땡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딱히 그런것도 아닌 듯 하다. 정말 세상은 남끼리 바글바글 얽혀사는 곳이니까. 5%안에 드는 인생이 아니라면 어차피 그 바글바글한 세상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 세상에는 똥주처럼 정말 한 대 패주고 싶은 말만하는 족속들도 많다. 어쩌면 그리도 이론에만 빠삭한지, 어쩌면 그리도 말은 잘하는지...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찾아가면서 저 인간 좀 빨리 데려가 주시면 안되나요? 들어줄 기도가 많이 밀렸다면 제 기도를 우선적으로 처리해 주시면 안될까요? 그것도 안된다면 그저 제 앞에서만 없어지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부탁하고 싶은 인간들 정말 많다. 일주일 내내 죄짓고 살다가 오늘 하루만 여기와서 회개하면 되는겁니까?  오지랍도 넓습니다그려.. 기도한 적도 정말 많다. 선생 똥주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위장취업이란 말이 떠올랐다. 완득이처럼 나도 그랬었다. 이미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해서 없는 사람들의 속까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테니까.. 상대를 진실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지 못하면서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상처로 남는지 나는 안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정말 완벽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정하기에 완득이를 바라보는 선생 똥주의 시선이 따스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제 안에 핵을 품고 있는데, 그거 잘 못 뿜으면 여럿 다치겠다 싶어서, 라던 체육관 관장님의 말씀.. 제 안에 핵 하나씩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수도없이 씨불놈을 외쳐대던 앞집 아저씨의 가슴속에도, 잘난 아버지의 처세술이 싫어서 뛰쳐나온 선생 똥주의 가슴속에도, 동네를 접수하겠다고 체육관을 찾은 중학생 녀석의 가슴속에도 저마다의 핵 하나씩은 자리하고 있을테다. 어쩌면 그 핵이 있어 살아가는 이유로 삼을 수도 있을테다. 킥복싱을 통해 화산처럼 분출해냈을 완득이의 가슴속에서 새싹처럼 파릇했을 윤하와의 풋사랑. 물컹물컹한 토마토에 입을 댄 것 같았던 첫 키스에는 달콤함이 없었다.  이쯤에서 나는 슬며시 어깃장을 놓는다. 그저 아름답게만 포장하려고 애쓰는 사랑이란 존재의 가치에 대해 한방 먹여준 작가에게 박수를! 

완득이의 가슴앓이를 정리해주는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후욱~하고 숨을 내쉬었다.  정말 작게만 느껴지던 내 인생의 크기.. 흘려보낸 내 지난날의 시간들이 등짐처럼 나를 휘어지게 했다. 그 휘어짐을 피기까지는 정말 한참이 걸리겠지.. 작은 것들이, 평범한 것들이, 주변에 머무는 것들이 소중하다고 늘 말을 하면서도 나는 그렇지않은 모습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분명히..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평범하지만 단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꿰어 훗날  근사한 인생 목걸이로 완성할 것이라던 완득이의 다짐을 나도 따라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돌아볼 수 있었던 내 성장소설의 단편은 정말 아픔뿐이었던 것일까? 되물었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아픔뿐이었다고 정의내린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되물었다. 마흔 중반을 살아내면서도 끝없이 되물어야만 하는 삶의 아이러니다.

불법체류자의 삶속에 숨어 있던 우리 사회의 모순점들은 너무도 많았다. 장애인들의 삶속에는 우리가 말로만 인정하며 피해갔던 뻔뻔함이 너무도 많았다. 비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우리의 현실을 뼈아프게 짚어내던 작가의 솔직함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또 한가지 정말 빼놓고 싶지 않은 이 대화체..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속이 후련해지곤 했었다.

"완득아! 완득아, 새끼야 빨리 문 열어!" 
"야이, 완득인지 만득인지 씨불놈아! 빨리 문 안 열어! 이것들이 밤마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완득이 문 열었잖아, 이 양반아!"
"어떤 씨불놈이 밤만 되면 완득인지 만득인지를 찾고 지랄이야! 야이 씨불놈들아! 니들은 전화도 없냐!"
"완득이네 집에 전화 없다잖아, 이 양반아!"
우리 집에 전화 있다. 하나님, 이번 주 안에 똥주 꼭 죽여주셔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정말 듣기에 민망한 대화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묘하게도 그 천박스럽고 민망한 느낌을 비껴간다. 오히려 저런 대화속에서 감춰두었던 핵이 하나씩 조용히 터져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속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매력이지 싶기도 하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선명하게 그려지던 밑그림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TV문학관 한편을 본 것처럼 생생하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소설 <완득이>는 정말 재미있다. 정말 솔직하다. 정말 시원하다. 정말 눈물난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손잡아주고 싶게 만드는 완득이 화이팅!  완득이를 만들어 낸 작가 화이팅! /아이비생각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이 미친 세상이 왜 자꾸 건드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34쪽)

이 세상이 나만 당당하면 돼, 해서 정말 당당해지는 세상인가? 남이 무슨 상관이냐고? 남이 바글바글한 세상이니까! 호킹 박사처럼 세상에 몇 안되는 모델을 두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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