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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내일의 기억>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의 카피에는 한국판 <내 머리속의 지우개>라고 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카피만 보고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실망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일의 기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순간이 있었다.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을 앓게 되는 주인공의 서글픈 스토리, 그리고 그런 남편을 위하여 마음을 쓰던 아내의 그 힘겨운 노력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 섬세한 표현들을 보면서 책이었다면...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연하게도 이 책의 작가 프로필을 보다가 <내일의 기억>이란 제목을 보게 되었다. 그렇구나, 그 영화도 책이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이 작품에 대해 은근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가슴을 울리던 작가의 필체를 영화를 통해서 이미 만나보았던 까닭이기도 하리라.
19살의 청춘.. 그 나이에 나는 무엇을 했었지? 책속에서 만나지는 두명의 주인공도 19살의 청춘이다. 하지만 똑같은 청춘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시대적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두사람의 삶속에서 어찌 같은 청춘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의 청춘 겐타와 1945년도의 청춘 고이치가 시간이동을 통해 서로의 삶이 뒤바뀌게 되는 현상을 보면서 편견에 빠져들뻔 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런 류의 이야기들이 우리곁에는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초월감은 뭔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시대가 만들어낸 이념과 삶의 모습이 아이러니 하다. 바다로 서핑을 나갔던 21세기의 겐타와 처음으로 단독비행에 올랐던 전쟁시의 소년병 고이치가 서로 몸이 바뀌어버리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기억할 것은 단지 서로의 육체, 몸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연말쯤에 본 영화한편이 생각났다. 부족할 것 없는 도시의 여자와 삶의 뒷편에서 늘 쓴맛을 보며 살아가던 시골의 여자가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비껴나 서로 집을 바꿔서 살아보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선적으로 나는 어느쪽이 더 현실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까, 혹은 어느쪽이 먼저 바뀐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할까를 생각했었다. 쉽게 말하면 모든 편리와 편안함이 몸에 벤 쪽에서 먼저 항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는 말이다. 이 책속의 두 주인공 역시 그와 비슷한 점을 묻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1세기에서 살았던 겐타의 눈에는 과거의 사람들 모습이 조금은 미개인스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21세기로 넘어온 소년병 고이치의 눈에 비친 미래의 사람들은 외계인처럼 보였을까? 하지만 우리의 두 주인공은 자신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생각을 한다. 몰래카메라가 어디있는거지? 이 프로는 도대체 언제쯤이면 끝나는거야? 를 외쳐대던 겐타와 자신이 적군의 포로가 되었을거라고 믿어 병원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고이치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 서글픔이 느껴졌다.
과거와 미래로 서로의 시공간이 바뀐 두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궁금했다. 책이나 영화속에서만 보여지던 전쟁시의 군대에서 생활하게 된 겐타와 부시맨처럼 미래세상으로 툭 떨어져버린 고이치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뒤 사실을 인정하게 되고 자신이 살았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고이치다. 삶의 편안함을 알아버린 그리고 사랑의 달콤함을 알아버린 과거의 고이치는 과연 어떤 쪽을 택하게 될까? 어느날 문득 바다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몸만 바뀌게 되어버렸던 두 사람의 1년은 과연 살아있는 시간이었을까? 그들이 다시 저마다 머물던 공간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살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겐타와 과거에서 넘어와 미래를 알게 되는 고이치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과거를 바꿔 미래를 흔들리게 하지 않았고 또한 앞서 달려와 만나게 되는 자신의 미래를 보면서 그 사실을 가슴으로 인정했다는 거였다.
삶이 뒤바뀐 두사람을 보면서 나는 문득 윤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같기만한 두사람.. 그래서 그 두사람에게는 원래의 공간속으로 되돌아간다는 사실 자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겐타는 고이치의 환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말이다. 겐타와 고이치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었다면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잡아주었던 미나미의 존재는 역시 사랑이다. 그 사랑을 향해 되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던 겐타, 어렵게 받아들였던 사랑을 두고 떠나기 위해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던 고이치..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제각각 머물렀던 공간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간 후의 그들의 변화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세상을 너무 쉽게만 생각했었던 이 시대의 청춘 겐타에게는 분명히 자신의 삶을 바라봄에 있어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과거의 공간속으로 다시 돌아간 고이치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 시간이동이란 주제를 바라다보면 환상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왠지 허무맹랑하다는 느낌이 앞서곤 했었다. 뭐랄까.. 좀 억지스럽다는 그런 느낌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게 그런 느낌이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우였음을 인정한다. 생각보다는 무거운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자주는 만나고 싶지 않은 시간이동이란 껄끄러운 단어안에서 生과 死가 얽힌 삶의 모습, 因緣과 輪廻에 대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조금은 산뜻하게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