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초
피에르 샤라스 지음, 홍성영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19초.. 짧은 시간일까? 긴 시간일까?  묻는다면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왜냐하면 저마다 처해진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테니까 말이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혹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나의 대답은 늘 이랬던 것 같다. 뭐, 별다르게 할 일은 없어.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내지 않을까? 사실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해서 내가 할 일이 뭐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늘 해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뿐인 것을. 이 책속에서 말하고 싶은 19초는 어찌보면 엄청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상당히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란 점퍼를 입은 남자가 스포츠가방을 두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 가방안에는 폭발물이 들어있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또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들에게는 늘 어제와 같은 오늘이 있을 뿐이다. 그런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밀어붙인다. 이제부터 세겠다, 그러니 긴장하라. 19초, 18초,17초,16초,......5초,4초,3초,2초 그리고 1초... 하지만 폭발물이 터지는 그 순간까지도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문제만을 가슴속에 안고 있을 따름이다.

1초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씩 전개되어진다. 위기를 맞고 있는 중년의 부부, 가브리엘과 상드린이 그 1초속에 갇혀있고,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뜬 소녀 소피의 환상적인 사랑도 그 1초속에 머물러 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전철을 탔을 때를 떠올려 본다. 사람들의 모습을.. 저마다의 표정으로 저마다의 한순간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그 표정속에는 저마다의 아픔과 저마다의 기쁨도 함께 한다.  몸이 부딪힐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우리는 단지 그저 그 공간안에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일 뿐, 서로에게는 사실상 아무런 존재가치조차도 없음이다. 책속에 나타나는 소제목들에 시선이 머문다. 제우스,스틱스,하데스... 19초가 1초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만큼은 제우스의 세상이다. 그리고 폭발물이 터지고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스틱스강을 건나가라고 한다. 이승과 저승사이를 흐르는 강이라고 했던가? 신화속에서 참 많은 이야기들을 잉태했었던 그 강을 건너 우리에게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하데스... 드디어 우리는 죽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사랑도 스틱스강의 저편에 두고, 꿈결같은 환상의 세레나데를 불러줄것만 같았던 그 처음의 사랑도 거기에 놔두고, 그렇게 우리에게 1초가 다가왔던 순간, 폭발물이 터지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이야기도 죽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19초와 1초 사이에서 방황하던 이야기들은 이제 시작이냐 아니면 마지막이냐를 묻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늘 시작이면서도 늘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잔인하게도.

이제 그녀는 오른쪽 다리가 없다. 피가 빠져 나간다. 목숨이 빠져 나간다... 식의 작가의 말투는 정말이지 건조하다. 폭발물이 터지고 그 고통과 절절한 회한이 머무는 순간에서조차 작가는 그 아픔과 고통을 절대로 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그리고 죽음이 찾아왔다, 라고 아주 간단하게 수첩에 빠른 메모를 하듯이 그렇게 적어두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있었으니까 죽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완전한 타인... 작가조차도 완전한 타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 타인의 감정으로 테러리스트라 말할 수 있는 노란 점퍼의 남자조차도 죽음속으로 내몬다. 또한 그 기차를 그냥 떠나보냈던 남자 우리의 가브리엘을 통해 또하나의 노란 점퍼 사나이도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가차없이 작가는 어쩌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가브리엘을 다시 죽음앞에 세워둔다. 아무도 가해자가 될 수 없으며 또한 아무도 피해자가 될 수 없음이다.

19초는 우리가 살아내야 할 혹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늘 우리를 조여오는 현실감각이란 느낌... 그래서일까? 작가의 카운트다운을 나도 함께 센다. 19초,18초,17초..... 나의 1초는 어느순간에 올까? 나의 1초가 다가온 그 순간에 내 안에서 폭발하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적으로 세계의 대도시에서는 테러리스트에 의한 폭발사고들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볼 따름이다. 그러니 그 감각 또한 멀다. 그러니 완전한 타인일수 밖에는 없음이다. 나 역시도 함께 전철을 타고 한공간속에 머무르지만 완전한 타인인 것을 어쩌랴.. 누구에게나 19초의 헤아림은 올 수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느끼는 것도 나일 뿐이다. 이 세상속에는 타인들의 시선과 타인들의 발걸음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 '19초'는 왠지 서글프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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