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조인간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무심코 걸어가던 아이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다. 아이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떼찌, 떼찌 왜 우리 아가를 울리는거냐 응? 떼찌!" .. 그리고 엄마는 아이를 달랬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그쳤다. 누가 옳을까? 아니 누가 아이이고 누가 어른일까? ..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캄캄한 세계에서, 어느날 지진 비슷한 것이 일어나고 곰 발바닥 같은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 붙잡혀 어머니의 자궁 밖 세계로 끌려나오면서 나의 세상은 시작되어진다. 우리 부모와 그 주변사람들에게는 첫아이였음으로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나를 안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시안에다가 냄비에 눌어붙은 된장 찌꺼기 같은 여학생이 나를 안으려고 손을 내밀 때 몸을 뒤로 뺄수 있을만큼의 심미안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나와 비슷한 것이 생겨난 것을 알았고 그것으로 인해 나는 나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처음부터 나를 아주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양인가 보다. 냄비에 눌어붙은 된장 찌꺼기 같은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생각하며 박장대소를 하게 만든다. 이렇게 나는 태어났다. 그리고 하나 둘씩 세상이 나의 의식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아쿠마 카즈히도야?"
"카즈히도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야"
"아빠와 엄마가 없어도, 세상 모든 사람이 사라져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강한 어린이가 되었으면 해서 지은 이름이란다"... 이렇게만 보면 모든 부모의 욕망은 똑같은건가? 세상 어디를 간다고 해도?
나의 이름은 아쿠마 카즈히도.. 불행하게도 나의 이름중 아쿠마는 악마惡魔 와 같은 발음이다. 그리고 카즈히도는 一人이다. 결국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악마인 것이다. 글자를 모르던 어린시절엔 그래도 괜찮았다. 단지 소리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 아쿠마 카즈히도는 부모의 그 심오한 뜻과는 다르게 惡魔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진정 악마가 되기로 결심하고 곧이어 행동으로 옮겨 요주의인물이 되기로 한다. 만지면 부풀어오르던 고추를 가지고 장난을 하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나외의 '나'가 더 있음을 알게 되고 그 나외의 '나'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한다. 그렇게 우리는 늘 그림자같은 나의 내면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거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그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사실조차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도 내 안에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며 한 사건을 두고도 '예스'와 '노'를 동시에 외쳐대는 아이러니를 겪는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또다른 나와 만나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책속에서 나를 이끌어가고 있는 나는 '책속의 나'가 아닌 '책을 읽는 나'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리도 내속을 박박 긁어대는지... 현실이란 건 어디서 마주쳐도 두려운 존재인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가오는 세상이란 굴레는 나의 덩치만큼씩 함께 커져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안에서 내가 찾아 헤매야 하는 것들은 비슷비슷하다. 사랑도 있을테고, 우정도 있을테고, 믿음도 있을테고, 배신도 있을테고, 행복이란 감정도 있을테고, 불행이란 감정도 있을테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내면속에는 그저 되는대로 막살고 싶다는 욕망도 함께 자리한다.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택하고 남은 것들이 또다른 나를 만들어낸다는 거다. 나의 그림자로 나와 똑같이 살아간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어디를 가든 늘 나와 함께일수 밖에 없다는 거다.

인간이 머리만으로 살다 보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해버리고, 쾌락도 고통도 모두 상상의 세계에서 맛보게 된다. 마침내 그는 논리의 미로에 빠져들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인간은 육체라는 피드백 장치가 없으면, 파멸하게 되어 있다. 한편 육체만으로 살아가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보통 사람은 그런 광인과 짐승의 경계를 어슬렁거린다.(40쪽)

참 무섭다. 머리만으로도, 그렇다고 육체만으로도 살아서는 안되는 인간이라는 동물.. 포유류중에서 가장 고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인간이란 동물이라고 했던가?  인간에게 있어 진화라는 것은 단지 자신의 삶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일뿐이라던 어떤 영화속의 자막이 떠오른다.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내가 보기엔 육체만으로 살아가던 시대를 벗어나 머리만으로 살아가는 시대로 접어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쩌면 태어나는 인간 모두에게도 바코드를 찍어야 할지 모른다는 말들이 공중을 떠다니고 있다. 그래, 어쩌면, 정말, 그렇게 될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속에서 흐느적거리는 두명의 아쿠마 카즈히도처럼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어느쪽에 머물러 있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그런 순간이 올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보통사람일까?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는 보통사람의 범주에 들기 위해서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말씀이야, 인간은 모두 미완성의 모조품이지. 옛날 사람들의 패러디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단 말이야. 나도 그래. 나는 누군가의 패러디다.(199쪽)

또하나의 아쿠마 카즈히도와 마주치기 위해,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성인이 된 아쿠마 카즈히도는 암벽을 타기로 한다. 그렇다고 내가 끝내주는 클라이머일 것이라는 생각은 마시라... 두 개의 칸테(암벽이 튀어올라온 부분)를 넘어서고 릿지를 오르며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과 마주치게 된다. 죽음이란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 와중에서도 고독이란 놈이 찾아와 나는 나자신과 끝도 없이 싸움을 한다. 여전히 나를 비웃고 있는 또하나의 아쿠마 카즈히도..  인간은 죽음 직전에 이르러 과거를 일순간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299쪽)... 하지만 나는 살았다. 죽음 5초전까지 체험하면서.. 그 순간 나는 아쿠마 카즈히도가 무엇인가를 알아버리게 된다. 결국 내가 또다른 나를 이기는 순간이다.  이 책속의 아쿠마 카즈히도는 책을 읽는 모두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불현듯 신화속의 남자가 떠오른다. 시지프스.. 무거운 바위를 굴리며 언덕을 올라야만 하는 우리의 시지프스.. 다 올랐다싶으면 다시 떨어져 내리는 바윗돌.. 우리에게는 우리가 올라야 할 정상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정상을 향해 서로 짓밟고 짓밟히며 올라야 하는 애벌레탑처럼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해주고 있는 (그게 아니라면 정말 끝내주는 번역가의 말일수도 있겠지만)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한번 곱씹어 보면서 나는 책장을 덮기로 한다. 아쿠마 카즈히도의 여운이 길---게 내게 남아 있을것만 같아 두렵기도 하지만... /아이비생각

 '나'는 유전자나 단백질의 번역기계, 유기적인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모조인간은 타인의 의식속에 사는 '나'의 환상이며, '나'의 의식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타인들의 환상이다. 인간은 이 두가지 부분이 꼬여 있기 때문에 이상해지는 것이다. '나'의 중추나 다른 기관들은 '나'의 의식속에서 살아가는 타인들의 환상작용 없이는 활동하지 않고, 타인의 의식속에 사는 '나'의 환상은 '나'의 중추나 다른 기관의 활동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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