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사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부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 실격이란 말에 자꾸만 시선이 갔던 까닭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 실격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순간은 언제일까? 표지에서 보여지는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뒷편으로 커다란 십자가처럼 버티고 선 채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는 전봇대의 위용.. 그리고 그 골목길은 참 스산하다. 왜일까? 그림속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서글프게 보이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도시는 회색빛의 건물로 가득 차 있다.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아니 말을 걸 수 없는 그런 차가움을 안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 저런 모습은 아닐까?  책표지의 작은 그림 한점이 이렇게나 많은 말을 뱉어내고 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사양 斜陽... 한자대로 풀이해보자면 이렇다. 비낄 斜, 볕 陽..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묻어나고 있음이다. 어쩌면 또한번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처음 책장을 펼쳐들면서 예외없이 작가의 이력을 파헤친다. 그렇구나, 결국 이 사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구나...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생각났다. 왜일까? 인간의 본질, 혹은 인간의 내면성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무책임해야 하는 것일까?  <설국>을 읽는 내내 조바심을 내던 나를 기억해내고는 이내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끝내는 책을 읽어냈다는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역시도 작가와 같이 깊은 수렁같은 절망속에 빠져들었지만 말이다. 그 절망감은 책을 통해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또하나의 알 수 없는 느낌 그 자체로 내게로 온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아프다. 끝없이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이는 것 같아도 궁극적인 애정결핍으로 결론지어져 버리는 상황이 나를 너무도 아프게 한다.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 어떤 겉치레가 필요하고, 보기좋은 허울이 필요하고, 표정을 숨겨줄 수 있는 가면이 필요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왜 그런 것들을 걸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감춰둔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속에 있는 것들을 위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속에서 움직이는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작가 자신이며 책을 읽는 자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도 아프게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늘 사랑에 목말라하고 늘 사랑에 굶주린 채로 살아가지만 자신 안의 사랑을 꺼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니 자신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랑을 향한 욕망이 변하여 자기학대를 하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위장한채 웃고 있는....

책의 서두에서 보여지는 석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은 정말이지 기묘하다. 첫번째 사진으로 보여지는 꼬마의 웃는 얼굴... 양손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웃고 있는 아이의 웃음을 이야기하며 결코 웃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란 이렇게 두 주먹을 움켜쥐고서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두번째 사진속에서 보여지는 청년의 모습...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진 장식품 같은 느낌으로 한 채로 웃고 있다. 계산된 표정도, 경박스럽지도, 멋스럽다고도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그 학생에게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고 음침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그런 이상한 미모를 갖춘 청년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가장 기괴하다고 쓴 마지막 사진속의 모습에는 아예 그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다고 써 있다. 웃고 있지 않지만 다른 어떤 표정도 들어있지 않은... 자연스럽게 죽어있는 듯한, 너무도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라고.  그래놓고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얼굴, 눈을 뜨고 다시 들여다봐도 생각나지 않는 얼굴이라고.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라고... 그 석장의 사진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느낌을 받아내야만 했던 그 순간은 내게도 끔찍했다. 그 석장의 사진만으로도 아주 간단하게 한사람의 일생이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실격속의 주인공 요우죠우를 보면서 나는 껍질도 없이 돌아다니는 달팽이같다고 생각했었다. 단단함이라고는 제 몸을 숨길 수 있는 등딱지뿐인.. 세상을 향해 더듬이를 내밀다가도 아주 작은 충격에도 놀라 그만 제 몸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마는.. 세상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너무 말라도, 너무 젖어있어도 안되는 특성이 그를 자꾸만 멈칫거리게 만드는.. 그렇지만 그 요우죠우에게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으니 결국은 모든것들로부터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하여 끝내는 자신의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어버리고 마는 요우죠우의 모습. 정서상으로는 사랑이 필요했던 거라고 말을 하지만 오롯이 그 사랑하나때문만은 아니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를일이다. 그런데 누구를 탓해야 할까?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인 아버지를 탓해야 했을까? 아니면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나 억눌림을 받았던 생활을 탓해야 했을까?  그런 외적인 형편보다는 진실되지 못한 채 앞뒤가 서로 틀린 인간의 모습들이 어쩌면 그를 자신만의 세계속에 안주하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양에서의 주인공 가즈코 역시 귀족 출신이다. 시대가 변하여 이미 귀족으로서의 틀이 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족정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변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가즈코의 현실은 그런 것들로부터 탈출하고자 제 스스로 타락하고 파탄의 길로 들어서고자 노력했던 동생 나오지보다 더 참혹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죽어간 어머니의 모습과 그런 모습을 만들어주었던 형식들이 싫었지만 결국 어머니를 닮은 여인에게 사랑을 느껴야 했다고 유서에 썼던 나오지의 모순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세상속에서 끝도없이 마주쳐야 할 모순의 하나일수도 있다.  남들이 말하는 생활 능력이란 게 없다고. 돈 때문에 남들과 겨룰 만한 힘이 없다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가 없다고 그래서 죽는 게 나을거라고 말하던 나오지의 착잡함은 정말 착잡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렇게 보여지는 형식의 틀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그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역경 또한 누구나 똑같다. 단지 더 아프고 덜 아프고의 차이일뿐이다. 그 느낌은 누가 느끼나? 그것 또한 내가 느끼는 것이다.  저 위에 가면 무엇이 있나요?  끝도없이 위로 올라가며 거대한 기둥을 만들었던 애벌레들의 질문처럼 요우죠우와 가즈코의 모습은 그 기둥의 끝에서 보았던 황홀한 날개짓을 위해 고치를 만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을 한다. 그 고치속에서 이제는 나와 황홀한 날개짓을 하기 위한 아픔이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코 누군가가 도와주어서는 안되는 그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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