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 리허설 - 살기 위해, 한 번 죽어 보기 ㅣ 세계척학전집 8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평점 :
지나치듯 본 화면에서 우연히 보게 된 故신격호 롯데 회장의 묘비명이 기억에 남았다. "거 가 봤나?" 참 멋진 묘비명이다. 만약 내가 죽어 묘비를 세울 수 있다면 이런 말을 쓰고 싶다. "울지 말고 웃어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죽음은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죽음을 삶과 따로 떼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오히려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한 채 유지되는 생명이 더 슬픈 일이다. 모든 생명의 탄생은 죽음과 손잡고 함께 온다. 행복이 불행과 손잡고 오듯이. 그런데 인간은 행복과 탄생의 기쁨만 느끼고 싶어한다. 그런 인간의 욕심이 죽음을 자꾸 외면하는 까닭에 죽음은 슬픈 것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굳이 죽음 리허설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보이는 말이 "잠시 머무는 손님에게는, 누구나 가장 좋은 잔을 꺼낸다."는 말이었다. 문장을 보면서 옛 사람들의 풍습이 떠올랐다. 손님이 오면 깊숙이 모셔두었던 좋은 그릇에 담아 대접하던. 하지만 다른 해석을 해보고 싶었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나의 삶을 위해 가장 좋은 잔을 꺼내야 한다고.
어떤 여인이 죽은 아이를 안고 사람들에게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약을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부처를 찾아가니 부처가 말했다. 한번도 사람이 죽은 적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 줌을 구해오면 약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만 어느 집도 사람이 죽은 적 없는 집은 없었다. 그제서야 여인은 아이를 묘지에 내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이 책에도 실려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 죽음을 외면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죽음 앞에서도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멕시코 애니메이션 중에 <코코>라는 작품이 있는데 거기에서 말하는 죽음의 의미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질 때가 그 사람의 진정한 죽음이라고.
책의 소개글에서 죽음을 끝까지 들여다본 이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인문 교양서라는 말이 보인다. 프로이트와 에피쿠로스, 몽테뉴, 붓다, 파스칼, 칼라니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철학자는 사유로, 의사는 임상으로, 심리학자는 실험으로, 소설가는 이야기로 같은 질문에 답했다고. 기독교를 신앙으로 두었던 C.S.루이스마저도 아내의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게 잘 풀릴 때는 그토록 가까이 있던 신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왜 이렇게 보이지 않는가. 모든 정의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음이다. 배워왔던 사회적 정의를 외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삶도 죽음도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으니 나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죽음을 주제로 한 영화 중에 <원더풀 라이프>라는 작품이 있다. 죽은 이가 거쳐 간다는 중간계에서의 7일을 그린 영화였는데,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망설임 없이 선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끝내 좋은 기억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 있을 때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죽음이 찾아와도 미련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