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몰이
조에 부스케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오래 걸렸다. 아직까지도 이 책을 내려놓는다는 게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도중하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으면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같은 문장, 같은 페이지를 몇번씩 읽어가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나를 이 책속에 머물게 했던 것일까? 어찌보면 거대한 은유의 물살에 휩쓸려 제정신을 차라지 못했던 것도 같고, 어찌보면 끝없는 나락의 저 밑창으로 한없이 떨어져내리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마져도 들었던 것도 같다.
보통 불가에서 말하는 '화두'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 자체는 어쩌면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 툭 던져놓고간 화두처럼 그렇게 무겁기만 하다. 이만큼 왔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에 나는 또 저만큼 멀어져 있으니... 읽고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반칙을 써보기로 했다. 책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싫어서 옮긴이의 말이나 책에 대한 해설을 가장 나중에 읽곤 했었던 나만의 법칙을 벗어나보기로 했다.  마지막 부분의 해설편에서는 이 책의 작가인 조에 부스케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조에 부스케의 작가정신이라기 보다는 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어쩌면 그의 사상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했었던 그의 생활들은 참으로 끔찍했다. 부스케 자신의 상처 체험을 극단으로 심화하여 그것을 존재론적 차원에까지 이르게 한 거대한 노력의 결정체... 우리가 자신의 상처와 불행을 어떻게 극복하여 육화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랑과 긍정의 이야기이며   가장 자전적인 산문이라던 광고의 말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다가와 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사실은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주 가끔씩 부스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현실을 그려내며 보여 주었던 대목을 빼고나면 너무 어렵다. 소용돌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올 듯 하면서도 다가오지 않는 어떤 느낌들이 너무 짜증스럽기도 했다.
너의 전 존재를 마치 너를 판단하기 위해 사건의 형태를 취한 것 같다.
색 속에서 사는 모든 것은 땅 밑에서 산다.
사람은 깨어나 살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말은 말의 기호이다. 우리가 깨어나는 세계에는 그것의 광대함을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등등등... 언뜻 언뜻 보여지는 볼드체의 말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부르조아 집안의 경직이 싫어서 결국 부모에게 복수를 하려고 전쟁에 자원입대를 하게 되었던 조에 부스케. 자살을 꿈꾸었던 그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무모함으로 대담함으로 전쟁을 치루어냈던 그는 장교 계급장까지 달게 되지만 부스케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싸우기를 원했다고 한다. 1918년 큰 부상으로 인해 잠시 병가를 보내게 되었을 때 한 여인을 만나 첫사랑을 하게 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다시 귀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쓰러진다. 척추를 뚫고 나간 총알이 그를 쓰러뜨리고 그대로 그곳에 버려지길 바랬던 그의 명령을 무시한 부하들에 의해 그는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부대원 전원이 전사하는 전장에서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다시 회생할 수 없었던 그의 삶은 침대와 더불어 이어지게 되는데 그 고통스러움과 절망의 끝에서 부스케가 희망처럼 부여잡았던 글쓰기의 결과가 이 책으로 태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죽는 날까지 침대에 누워 지내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시작했으며 철학과 문학에 빠져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다시 원점. 천천히, 천천히 다시 읽기 시작한다. 아마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다시 이 책을 잡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통의 깊이가 너무 깊어도 그 고통을 인식할 수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조에 부스케에게 있었던 그 고통은 고통이기에 앞서 하나의 절망이었고, 하나의 희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우리의 삶이 안고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 역시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절망이며 희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을 안고 뒹굴었던 화두 '달몰이'의 무게가 자꾸만 나를 가라앉게 한다. /아이비생각

인간은 그가 제어하는 사건들의 장소이며, 그가 제어하지 못하는 사건들의 장소이다.(43쪽)
우리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이 분리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처를 내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67쪽)
사람들은 보존할 가치가 있었던 것에만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때 사람ㄷ르은 무엇에도 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우리의 가치들이 있는가? 나는 이 가치들이 심지어 우리의 실존이 우롱하는 정의에 대한 사랑속에 있다고 믿는다.(100쪽)
세계의 진부성은 우리 직관의 불완전성 때문이고, 우리의 주의력 불능 때문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의해 뚫려진 밤의 시야처럼 사실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항상 애매하고 막연하다. 사람은 그토록 눈이 멀었지만 자신이 희미하게 들여다보는 세계의 불충분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이 하나의 세계를 열어 줄 것을 요구한다.(161쪽)
의식은 인식의 모든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의식을 인식의 자리에 놓는 데 온 상상력을 사용할 것. 의식은 '있는 것'에 따르고, 인식은 '우리인 것'에 따른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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