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는 가장 완벽한 노예가 된다 ㅣ 시대철학 3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 지음 / 비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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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 말기 로마노프 황실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신비주의적 수도사이기도 하다. 당시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의 건강 상태를 호전시키면서 황후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 황후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그의 권력은 시작되었다. 내정 간섭, 고위 관료 임명까지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로 인해 귀족과 정치 엘리트, 일반 대중의 강한 반감을 샀으며, 결국 그는 귀족 집단에 의해 암살당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황제에게 남겼다는 예언이 서늘하다. 만일 당신의 일족 중 누구라도 내 죽음에 연루된다면, 2년 내에 당신의 일족, 가족과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러시아 민중들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의 예언처럼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2단계를 거친 러시아 혁명은 제정을 붕괴시키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정치적 대변혁이었다. 2월 혁명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로마노프 왕조의 종말을 불러왔고, 10월 혁명은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가 무장 봉기를 통해 임시 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한 나라가 망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왕권이 약해지거나 법령이 경시되는 정치적 요인도 있고, 사치에 빠지고 백성이 곤궁해지는 경제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붕괴된다는 구조를 갖는다. 위기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누군가 나서서 그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영웅 혹은 구원자가 나타나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 책은 위기의 순간에 인간이 얼마나 쉽게 구원자를 자처하는 인물에게 의존하고, 합리적 판단과 시스템을 포기한 채 맹신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음에도 기시감이 드는 건 왜일까? 작금의 우리 현실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책의 소개글에서도 말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혼란이 커지는 현대사회에서도 우리는 타인과 시대가 제시하는 막연한 구원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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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행적을 따라가기 보다 그에게 의존하는 주변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목록에서 보이는 글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다. 낡은 상식을 신봉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잡아먹힌다, 타인의 잣대에 의존하는 순간 당신의 목줄은 넘어간다, 얄팍한 자격증명에 목매는 비참한 노예 짓을 멈춰라, 생각하기를 멈춘 군중은 스스로 학살자를 추앙한다 , 정해진 길을 걷는 모범생은 결코 룰을 지배할 수 없다. 1장에서 나열한 목록들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2장의 목록들은 더 아프다. 모든 인간의 밑바닥에는 구원받고 싶은 치명적 결핍이 있다, 논리로 설득하지 말고 가장 깊은 두려움을 쥐고 흔들어라, 상처를 위로하는 척하며 영혼의 주도권을 완벽히 강탈하라, 기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맹종을 끌어내는 가장 쉬운 마약이다 , 상대가 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도록 판을 철저히 조작하라. 바로 이 점들을 라스푸틴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혼란의 시대일수록 구원자를 자처하는 악마들이 판을 친다, 적의 가장 치명적인 맹점을 찔러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어라, 권력의 정점에 선 자일수록 불안의 크기는 가장 거대하다, 핑계를 대며 머뭇거리는 자는 언제나 포식자의 쉬운 먹잇감이다. 4장의 목록속에서 대한민국의 현실이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일까? 어쩌면 지금을 혼란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남의 정답을 구걸하는 자는 평생 남의 장기말로 소모된다, 거룩한 척하는 위선자들의 껍데기를 벗기고 진짜 욕망을 쥐어라, 누구도 감히 당신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하고 심판하지 못하게 하라. 5장의 목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에필로그를 통해 이렇게 당부한다. 남의 생각에 끌려다니는 노예의 삶을 끝내고 기꺼이 지배자로 군림하라. 思惟 : 대상을 두루 생각하거나 이성적으로 판단·추리하는 작용을 뜻함. 어학사전이 말하고 있는 생각의 의미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맞이하는가. 세상의 잣대보다 나만의 잣대가 필요한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思惟를 외면하는 삶이 불안한 것은 當然之事라는 생각이 든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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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상식은 왜 이토록 끈질기게 우리는 붙드는가.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따르는 한 우리는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하면 되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면 된다. 상식은 개인의 판단을 집단의 익명성 속으로 녹여준다. 잘못되어도 나 혼자 잘못한 것이 아니고, 실패해도 나 혼자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안온함이 사유를 서서히 마비시킨다. 사유란 결국 홀로 결단하는 일이며, 결단이란 결과를 홀로 껴안는 일이다.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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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부끄러움과, 나를 다루기 쉽게 만드는 부끄러움. 앞의 것은 지키고 뒤의 것은 버리면 된다.(-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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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가에 너무 자주 흔들린다. 타인이 던진 알량한 인정 하나에 존재의 가치를 승격시키고, 얄팍한 비난 한마디에 영혼의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이 감정의 널뛰기 속에서 사유의 두께는 한없이 얇아지고, 결국 남의 잣대 없이는 스스로 서지 못하는 빈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빈껍데기의 얇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위장과 더 많은 해명을 준비하게 되고, 그 준비물이 늘어날수혹 그는 점점 더 남의 시선의 노예가 되어간다.(-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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