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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 황석희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같은 언어 안에서도 번역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번역가의 수필집이다. 남의 말이나 글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그 말이나 글이 담고 있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까? 어지간해서는 글보다 말로 먼저 표현되는 게 우리의 감정이다. 그 표현하는 방법 또한 많다. 은유법, 과장법, 비유법, 점층법 등 다양하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어떤 이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가 하면 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말이 품고 있는 뜻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리말의 포용력은 정말 대단한 듯 하다. 번역하는 방법도 직역이 있고 의역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수도없는 오역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받아들이기 마련인 까닭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때도 있고, 그와는 정반대로 전해질 때도 있다. 오죽했으면 말의 중요함을 깨우치게 하는 '쏟아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격언이 있겠는가.
그 누구에게도 정의되지 말자. 특히나 내게 무가치한 사람이 하는 좋지 않은 말에는 더욱. 그들에게 정의되지도, 한정되지도 말자.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이며, 나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누군가의 의견을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하자.(-92쪽)
이 책에는 작가의 일상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일상속에서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부조리한 사회의 일면을 보기도 하고,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며, 가족과의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겨보게도 한다. 말이 너무 많아 말로써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 역시 번역가의 삶을 살면서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한다. 저자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런 일을 한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다시한번 깨우치게 된다. 나의 삶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돌아보니 나쁘게 말한다면 융통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 나만의 삶을 고집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타적이지도 않았지만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마지막 장에 다정한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고, 좀 더 믿어보자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솔직히 다정함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모티콘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시대이지만 조금이라도 말보다는 마음이 앞서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아이비생각
어떤 논리가 있든 어떤 사정이 있든 내 마음에 안 들면 틀렸다고 주장하는 태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면 대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목소리 큰 사람과 싸우는 건 피곤한 일이거든.(-159쪽)
나는 그냥 선을 긋고 살고 싶다. 그런 이들을 실재하는 존재로 인정하면 내 인간 혐오가 수백 배로 부풀 것 같다. 이대로 저들을 저편에 분리수거한 채 이쪽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악질적인 오역가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 의도가 악하든, 역하든 요령이 좋은 오역은 혐오 시장에서 통한다. 그 오역물이 선정적이고 추할수록 반응이 좋고 돈이 된다.(-2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