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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쟁이 유씨
박지은 지음 / 풀그림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어허야,어허야.. 이제 가면 언제오나... 딸그랑 딸그랑...
하얀꽃으로 치장을 한 채 논둑길을 따라 그림처럼 보여지던 기억하나가 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꽃상여가 나가던 그 광경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뒤를 따라 하얀소복을 입은 채 따라가던 사람들의 모습..
생을 다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저승길로 가는 사람들은 살아왔던 그 길을 되돌아 볼 수 있을까? 뒤를 따라가는 사람들 역시 떠나간 사람이 살아왔던 길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을까? 나는 늘 주장한다. 생을 다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고. 그러니 떠나는 자와 남는자 모두는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한다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죽은 다음에야 평가된다는 말도 있지만 글쎄, 나는 아직 모르겠다. 하여 이 책속에서 나는 어쩌면 죽은 자와 그가 남기고 간 인연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을 당신 하나밖에 모르고 사셨던 내 아버지를 끝내 보내드리지 못한채 붙잡고 있는 못난 자식의 마음이 미워서 어쩌면 또하나의 위안을 찾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염치없게도..
내가 죽은 사람을 보내드리는 염하는 자리에 있었던 적이 몇번이었던가? 딱 두번뿐이다. 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적에 시어른들께서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라고 염하는 자리에 들여보내셨고, 내 아버지 돌아가셨을 적에야 물론 코앞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리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멍한 시선으로 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죽음은 무엇일까?
염쟁이 유씨를 통해 들었던 죽음또한 무섭거나 흉하다거나 하는 따위의 느낌은 없었다. 죽음 자체보다는 그 죽음으로 파생되어진 인연의 고리를 어떻게 잘라내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핑게없는 무덤이 없다던 속담처럼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저 그냥 시간이 되었으므로 죽음을 맞이하던 사람들에게조차 그 죽음으로 이어질 고리들을 하나씩 달고 있었다. 행복한 죽음, 불행한 죽음, 힘겨운 죽음, 편안한 죽음... 이런 정의조차도 살아있는 자들이 평가해야할 몫으로 남겨진다. 정작 본인은 가고 없는데 남은자들이 그 죽음을 정의내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사망 원인 1위는?" " 운동장에 금 그어놓고 놀이하다가 금 밟고 죽는거!"
"그럼 어른들의 사망 원인 1위는?" " 광 팔고 죽은거!"
염쟁이 유씨가 들려주었던 죽음이야기이다. 금 밟고 죽는게 제일 원통한 일이라고. 그리고 또 묻는다. 왜 넘 죽은 상갓집 가서 광 팔고 죽느냐고. 죽은이는 말이 없다. 간혹 유언을 통해 죽어서도 말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나머지는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말이다. 스스로 죽는 순간까지 후회없는 인생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고 후회하지 않도록 살아 있을 때 잘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란 염쟁이 유씨의 말은 어쩌면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영영 이별이든 잠시 이별이든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다 똑같이 이별의 순간이 오면 후회하지 않을만큼씩은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죽는 순간이 오면 혹은 이별의 순간이 오면 누구나 후회스러운 일들만 생각나고 잘해준 것보다는 못해준 것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한다. 왜 그럴까? 참 알 수 없는게 사람마음이다.
깊이 사귀지 마세, 작별이 잦은 우리들의 세계.. 악수가 짐이 되면 작별을 하세..
문득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병화님의 싯귀가 떠오른다. 오죽했으면 하는 마음이 덩달아 따라온다.
악수가 짐이 되는 세상.. 마음문을 닫아 걸고 살아간다면 평생을 나누는 악수 모두가 짐이 될게다.
죽음을 통한 염쟁이 유씨의 절규는 우리에게 마음의 빗장을 어서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오로지 나밖에는 살펴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세상은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염쟁이 유씨를 통해 들었던 스물한편의 죽음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였다. 지금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한번쯤은 되돌아보아야 할 모든 문제들이었다. 우리가 잊고자 노력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사람냄새를 찾아 헤매인다. 그 사람냄새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을... 부모자식간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냄새, 친구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냄새, 연인지간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냄새,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지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사람냄새... 우리가 찾아 헤매이는 사람냄새는 여기저기에 그야말로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 너무도 아프게 콕콕 집어 말해주고 있는 염쟁이 유씨의 이야기속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아픔들이 녹아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그 안에 들어있다. 참으로 따뜻하고 평온한 죽음이야기들... 가볍게 읽었지만 남는 여운이 무거웠던 이야기들.. 특별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쉽게 내버릴 수 없는 염쟁이 유씨의 이야기들이 나의 가슴을 적셔주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