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 방송국 PD의 살아 있는 인문학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천형(天刑)을 받은 시시포스가 불행한 이유는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시시포스에게 오늘은 파란 공을, 내일은 노란 공을 들어 올리라고 했다면 아마도 덜 불행해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시시포스의 불행은 돌을 들어 올리는 힘든 노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지루함에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시시포스는 불행의 근원인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즉 ‘변화’를 위해 내일은 오늘보다 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릴 의사가 있는 걸까? 러셀은 “그렇다”라고 답하고 파스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결정이 또 다른 불행을 낳는다고 경고한다. 물론 정답은 시시포스 자신만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45쪽)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인간에게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저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 느낌을 불러온다. 공연스레 책제목에 딴지를 걸면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인간인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마도 생활밀착형 성찰이라는 말이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게다가 방송국 피디가 쓴 살아있는 인문학이라고 하니 상당히 매혹적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인문학이라는 건 뭘까? 인문학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사람에 관한 학문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 것은 사람과 연관되어져 있는데 어째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난 것인지 그게 또 궁금하다. 그저 말하기 좋아하고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만들었을거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피식거린다. 책을 펼치기 전 책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온갖 형식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적어도 생활밀착형 성찰이니까.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불편해하는 사실들이다. 삶의 여정에서 큰 일을 몇 번 겪으면서 휴대전화의 연락처가 줄어들었다. 그냥 '아는 이름'들은 그 때마다 지워버렸던 까닭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늘 '언젠가는'이라는 말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듯 하다. 언젠가는 쓸지도 몰라,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몰라, 언젠가는... 그래서 버리지 못하고 지우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꼭 필요한 것들만 곁에 두고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1장에서 바라본 사람의 거리라는 주제가 많은 화두를 던진다. 인문학이 인간의 가치와 표현을 대상으로 하는 까닭으로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문학이나 역사도 만날 수 있고 아주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도 자주 등장한다. 인간의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자신과 타인에게 얼마나 크고 깊은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방면에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묻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했겠느냐고. 상처를 받은만큼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진실보다는 거짓을 더 많이 앞세웠을 것이다. 생각과 말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존재는 아마도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자신에게조차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며 은근히 즐기는 인간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알고 있는가? 인간의 관음증은 고대로부터 있어왔다는 걸. 수많은 욕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도 드러낸다. 이쯤에서 한국만큼 찰진 욕을 쓰는 나라도 없다는 말이 떠올라 실소를 터트린다. 어김없이 신에 대한 물음도 던지고 있다. 탈종교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과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지만 그 의미조차도 무의미하다는 말은 한번 더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인간의 죽음은 태어남과 함께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는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책을 덮으며 묻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 왜 우리는 시시포스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어찌보면 인간은 완벽하게 세뇌당한 채 살아가는 존재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