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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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미터가 우리한테는 그저 열 발자국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작은 곤충에게는 그야말로 구만 리 같은 길일 겁니다. 게다가 시력이 탁월해서 7미터 전방을 내다보면서 “저기 있네” 하고 직선으로 달려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곤충은 양쪽에 있는 식물들을 먹어봐야 해요.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면서 가야 하는 거예요. 굉장한 시간이 걸리겠죠. 그동안 그 곤충이 먹어 치운 그 식물은 또 이파리를 내고 생장합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자연계의 다양성이 일단 확보되면 그게 유지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습니다. (237~238쪽)

통섭統攝....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 라는 의미라 한다. <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을 저술한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사용한 'consilience'를 그의 제자인 이화여대 교수 최재천이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한다. 우리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심비우스'가 되어야 한다고. Homo symbious, 공생하는 인간을 말한다. 슬기로운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그 슬기로움으로 스스로를 묶어버린 꼴이 되어버린 영장류, 인간. 이 지구상에서 이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 누군가는 말한다.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라고. 뭣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 말에는 백퍼센트 공감한다. 최재천교수의 말처럼 기후변화와 지구상의 생물들을 멸망에 이끌고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모든 다른 생물종과 함께 공생하고 협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작금의 우리를 보더라도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생물의 다양성은 고사하고 인간끼리의 다양성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기심과 오만함이 온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생각이 다르면 적이 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가까스로 그 엄청난 공포에서 벗어난 개미들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둥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28~29쪽)

개미들은 불타는 통나무로 왜 돌아갔을까? 애벌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희생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그 희생을 치뤄야만 한다고. 후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는 희생해야만 한다고. 얼마전 우연히 본 기사에서 저자의 말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그 말에 동의 한다. 작은 생명체들도 먹을 것이 없으면 새끼를 낳지 않는다.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간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래서 저자는 또 일갈한다. 환경을 지키는 일만이 지금의 우리가 살 길이라고. 그럼으로해서 다양한 생물들과 공생할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기후 현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내 손에 쥐어진 편리함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앞만 보고 달려가게 만든 경주마처럼.

최재천 교수는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 사회생물학자다. 저자 소개글을 보면 이렇다. 거의 알려진 바 없던 '민벌레'를 최초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연구한 찰스 다윈의 성선택 이론부터 곤충에서 시작하여 거미, 민물고기, 개구리를 거쳐 까치, 조랑말, 돌고래, 그리고 영장류까지 전 생명의 진화사를 인문학과 아우른다고. 저자는 묻고 있다. "인간이 이 지구에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래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최재천 교수가 걸어왔던 발걸음의 흔적이다. 앞서 했던 저자의 강연들과 열림원 편집부와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입부를 지나면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마치 그의 강연장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만큼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결국 저자의 말은 간단하다.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게 아니다. 모든 생물과 함께 공생하고 협력할 때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거였다. 편리함과 이익만을 따지지 말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가야한다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친 사회는 결국 오래갈 수 없다고.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잡지 못하고, 또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너무 많은 비와 눈이 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작금의 우리가 진짜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책을 읽고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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