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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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들과 함께하면서 싯다르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자아에서 벗어나는 수많은 길들을 걷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고통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고난을 겪으면서, 고통과 굶주림과 갈증과 피로를 극복하면서. 그는 자아를 죽이는 길을 걸었다. 명상을 통해서, 감각을 비워 일체의 상을 버림으로써. 그는 이러저러한 길들을 배웠다. 수천 번씩이나 자아를 버렸고,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이나 자아를 떠난 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나 자아를 떠나는 길들을 걸었음에도 그는 그 길이 끝나면 다시 자아로 되돌아오고 말았다.(-32쪽)

브라만으로 살며 날마다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명상 중에 깊은 회의에 빠진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 최고의 스승들,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결국 싯다르타는 참나를 찾기 위한 길을 가기로 한다. 그의 길에 친구 고빈다가 따라 나선다. 고행수도승이 된 두 사람은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 명상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 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그러던 중 그들은 고타마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위대한 성인이라는 그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고타마. 제따와나 숲에서 고타마를 만났으나 싯다르타는 그의 제자가 되지 않고 깨달음의 순례를 계속하기로 결심하고 고빈다와 헤어진다.

오! 이제 더 이상 싯다르타가 나에게서 빠져나가게 하지 않겠어. 더 이상 참나니 세상의 번뇌니 하는 것들을 생각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나를 죽이고 갈가리 찢어서, 그 조각들 배후에서 어떤 비밀을 찾아내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요가베다의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아. 아타르바베다의 가르침도, 금욕주의자들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에게서 배울 거야. 나 자신의 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고 싶어.(-65쪽)

가르침을 통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싯다르타는 다시 세속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와 함께 지내며 대상 카마스바미에게서 부를 습득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고자했던 싯다르타. 많은 돈과 여인들과 술에 찌들어버린 싯다르타는 어느 날 문득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역겨움을 느끼고, 꿈을 꾸게 된다. 카말라가 기르던 새가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해서 새장을 열어보니 새가 죽어 있었다. 싯다르타가 죽은 새를 길 위로 내던지는 순간 큰 슬픔이 느껴진다. 꿈에서 깬 싯다르타는 깊은 슬픔이 자신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낀다. 삶을 무가치하게, 의미없이 보내버렸음을, 그의 손에는 살아 있는 것도, 뭔가 소중한 것도,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두고 떠난다.

고빈다야, 나는 돌을 사랑할 수 있어. 그리고 나무도 사랑할 수 있고, 나무껍질 한 조각도 사랑할 수 있어. 사람들은 사물들을 사랑할 수 있어. 그러나 말은 좋아할 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가르침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가르침은 단단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아. 색도 없고, 모서리도 없고, 향기도 없고, 맛도 없어. 가르침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말뿐이야. 네가 평화를 얻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일 거야. 무수히 많은 말, 그것이 너의 평화를 방해하는 거야. 구원도, 미덕도, 윤회와 열반도 역시 단순히 말뿐이지. 고빈다야, 우리가 열반이라고 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단지 열반이라는 말만 있는 것이지.(-216쪽)

마침내 싯다르타는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카말라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얻게 되고 부모로써의 고뇌를 한번 더 알게 되지만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셨던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삶의 모든 정의는 인간의 의식만으로 정해진 것이다. 싯다르타의 말 속에서 말로 된 가르침은 그저 말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또한 '네 안의 부처를 죽여라' 라는 말도 생각나게 한다. 싯다르타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또다른 자신을 찾게 되었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 자신을.

헤르만 헤세는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해 종종 고백해왔으며, 그 믿음을 책을 통해 밝히고자 했다. 그 책이 바로 『싯다르타』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학문에 친숙했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문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실제적으로도 그의 작품을 통해 불교 사상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선교사의 아들이었고 신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는 말을 보면서 故최인호 작가의 <길없는 길>이 떠올랐었다. 작가 역시 카톨릭 신자였음에도 <길없는 길>이란 작품속에서 대한불교계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는 경허스님의 업적을 따라가고 있음이다. 우리는 보통 석가모니를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속에서는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따로 분리했다. 불교의 '不二' 는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아마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교는 종교보다는 철학에 가깝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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